중국사에서 서주라는 시대를 인정해야될까?
1. 서주라는 시대를 인정해야 하는가? 서주라는 시대는 공자나 맹자와 같은 유교 사상가들이 가장 이상적이 평화로웠던 시대라고 규정한 시대입니다. 중국 문화의 기본 틀은 봉건제도, 정전제도, 종법제도 등이 이 시대에 나왔고, 실제 이 시대에서는 이러한 이상적인 틀들이 이상적으로 잘 지켜진 시대라고 유교사상가들은 말합니다. 전통적인 중국의 유교주의자들은 옛날 문헌의 모든 사실들을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서주는 봉건제도를 완성한 중국의 이상사회로서, 가장 가치있는 시대의 경험이라고 말이죠. 반대로 말하자면, 이러한 이상시대인 서주를 멸망시킨 춘추전국시대란, 암흑시대요, 저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도 있는 것이죠. 그러나 중국 신문화운동기를 주도했던 근현대 사학자들은 서주시대의 이상을 철저하게 비판합니다. 중국의 현대화를 위하여 중국 전통 사상인 유교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었던 사람들은 서주라는 시대가 유가주의자가 만들어낸 허구 시대라고 말합니다. 삼황오제의 전설은 제자백가시대에 창작된 창작물에 불과하며, 유교적인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국가는 실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죠. 이들은 아예 서주 및 중국고대사들을 하나하나 비판하면서 서주 이전의 역사기록들이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역사에서 서주의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전 시대인 은나라의 유물이 더 많죠. 2. 그래도 서주 시대는 중국사의 기본틀이다. 문제는 서주 시대를 인정하든, 하지 않든 간에 서주시대가 중국사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실제, 중국역사를 통털어 서주시대의 제도, 문물의 영향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받지 않은 시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서주시대는 중국 역사에 있어 창업, 개혁, 제도정비 등의 모델로 자리잡았죠. 예를 몇가지 들어볼까요? 일단 중국 역대 왕조들 중에 <주>라는 이름의 국가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북주, 후주, 무주 등등이 그렇지요. 또, 왕망은 <신>이라는 국가를 창건할 때, 국가의 이상적 모델로 서주의 제도들을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또, 전단계국가를 멸망시키고 다른 국가를 세울 때 하늘의 계시를 받아 나라를 세운다는 <역성혁명>의 이론도 주나라의 왕조교체에서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중국식 시호제도, 봉건제도, 종법질서, 정전제도, 가족질서 등은 모두 서주의 모델을 근거로 하여 체계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중국 대부분의 통일왕조는 모두 서주의 근거지인 <위수분지>를 거점으로 창업하였습니다. 유일하게 위수분지가 아닌, 중국남부에서 창업한 나라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명>나라 밖에는 없습니다. 이 위수분지는 농사짓기에 최적의 위치이자, 이민적을 막기에 천연의 요새지이고, 동서교류의 요충지로서 서주 이후의 국가들은 이 곳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3. 은에서 주로 교체되는 시기의 논쟁 은나라가 망하면서 주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의 <역성혁명>에 대해서도 역사적인 평가가 많이 갈라집니다. 은나라가 망한 것은 걸왕의 폭정 때문이며, 주를 세운 무왕은 <하늘이 새로운 뜻>으로 자신을 택하였다는 <역성혁명>의 이론으로 주를 세웠습니다. 이 <역성혁명>이란 것은 주나라가 <하늘>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것을 뜻합니다. 은나라에서의 천명사상은 <신성함> 그 자체입니다. 은의 황제는 하늘의 자손으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존재이며, 선천적으로 절대자입니다. 그러나 주나라의 천명사상은 하늘의 뜻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은나라 왕이 폭정을 했기 때문에, 그를 처단하고 새로운 하늘의 뜻을 보여준다는 <역성혁명 : 성을 바뀌어 새로이 하늘의 뜻을 대신함>은 후천적이고 가변적인 천명입니다. 이러한 주의 <천명사상>은 후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용됩니다. 실제, 삼국지를 보면 위나라 조조의 아들 조비가 나라를 세울 때, 황제가 나에게 <쳔명>을 양보하여 황제가 바뀐다는 <선양의 예>에 따라 황제가 등극하는 예를 보여줍니다. 그 이후 이 천명사상은 중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왕조교체의 논리로 이용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주의 왕권 교체가 과연 혁명적이였는가에 대한 논쟁입니다. 보통 혁명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주나라가 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세움으로서 봉건제도, 종법제도라는 중국적 제도를 완성했으므로, 은주혁명은 아주 획기적인 혁명이라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서주의 등장은 은나라의 체제를 계승한 국가로서 혁명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계승한 국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서주시대의 봉건제, 종법제, 읍제국가체제는 이미 은나라 말기에 있었고, 서주는 은말체제를 계승한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유교주의자들이 서주를 위대하게 보는 것을 깔아내리려는 신문화운동기 학자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 내포된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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