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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후, 크리스트교 이야기 2번째

읽기 전 부탁 : 이 파트는 종교사가 아닙니다. 역사적인 부분이니까 종교적으로 덤비지 마세요.

1. 크리스트교에서 이단이란 무엇인가?

자, 이번에는 로마제국과 크리스트교 이야기 중 후반부로 이단이야기를 좀 다룰께요. 로마제국이 크리스트교를 본격적으로 인정하면서 크리스트교의 정체성에 대한 많은 논란이 시작됩니다. 신의 성격은 무엇이며, 신과 황제는 무엇이 다르며, 예수는 신성성을 가지는가의 문제와 부활의 확실성, 로마제국이 예수를 심판한 것에 대한 정당성문제 등등 끝없는 문제들이 돌발적으로 나옵니다. 로마 제국과 초기 크리스트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하게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황제와 교황에 의해 이러한 논의들은 차츰 이론적으로 해결되어 가며, 그 이론이 완성될 쯤엔 완성된 이론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들이나 학파를 <이단>이라 규정하기 시작합니다.

실제 유럽의 고대, 중세, 근대기에 이단으로 마녀사냥당한 종교교파들을 보면 3부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정말 신을 부정하는 크리스트교 공격파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게 나타납니다.

두 번째로, 크리스트교의 교리상 문제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는 파들이 있는데, 이러한 파는 이단으로 추방당합니다. 그리고 추방당한 파는 완전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의 강건함을 내세워 아시아나 북방 이민족의 크리스트교로 자리잡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 아리우스파 등의 크리스트교파는 아주 오랜 기간동안 서아시아부터 동아시아까지 전파되면서 아시아 문화에 영향을 줍니다.

세 번째로, 크리스트교와 교황이 세속화될 때, 교회개혁차원에서 기존 권위에 덤비는 신비주의파나 성경주의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중세에 대표적으로 이단 취급을 받아 <소멸>당하곤 합니다. 이들은 초기에는 기독교 교리를 확립한 교부들에게, 후기에는 교황세력에게 밀려 역사에서 사라지곤 했습니다. 알비즈와, 후스파, 도닌파, 위클리프의 경견주의파 등이 해당됩니다. 실제, 중세를 대표하면서 신앙을 지켜간 프란체스코파도 초기에는 교황에 의해 이단으로 몰릴 뻔 했다고 하며, 후기에는 도미니쿠스파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일부 계파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2. 초기 교회에서 이단논쟁

초기 교회에서 가장 강성했던 파 중의 하나가 <그노시스>파입니다. 그노시스파의 성격은 한마디로 <영지주의>학파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들은 오로지 영적인 측면만을 강조합니다. 오직 영적 깨달음과 기도와 신성함으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생활을 완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생활한 것도 십자가에 속죄한 것의 의미는 완전 부정하면서, 오로지 신으로서의 존재만을 인정하는 학파입니다.

이 그노시스 학파의 이론은 로마 사회에서 큰 문제점을 불러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인가? 그를 죽인 로마는 누구를 죽인 것인가 등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놓고 그 유명한 그리스도의 <신성 논쟁>이 발생합니다. 그노시스파의 명맥을 이은 아타나시우스파에 대하여 아리우스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인 신과 아들인 그리스도는 동일한 본질일 수가 없다. 그는 사람으로서 태어나 사람으로서 로마제국에 의해 죽게 되었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은 신으로서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유사본질>이다.

이렇게 말했죠.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하는 발언으로 들릴 수 있는 내용이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파는 그리스도는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신으로 지상에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즉,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한 것일 뿐, 그리스도 자체가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 신과 아들신, 그리고 성령은 원래부터 신으로서 존재하였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것을 <동일본질설>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삼위일체설>이라고도 하죠.

결과적으로 신성논쟁은 <유사본질설>과 <동일본질설>의 대립으로 압축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를 열었고, 여기서 삼위일체설을 채택하여 아타나시우스파를 공식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황제의 공식 선언에 대해 교회의 각 계파들이 인정하지 않고 계속 논쟁과 싸움을 계속하였습니다. 훗날, 테오도시우스가 크리스트교를 국교화 하면서 다시 한번 삼위일체설을 확인하고, 반대파를 추방함으로서 이 논쟁은 대충 일단락 됩니다. 아리우스파는 추방된 이후, 게르만 사회로 넘어가 그들의 교화에 주력합니다. 게르만인들이 중세에 크리스트교를 쉽게 받아들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추방된 아리우스파의 활약이였습니다.

실제, 그리스도의 신성성, 인간성 논쟁은 끝없이 계속됩니다. 에페수스 공의회, 칼케톤 공의회 등 역사상 유명한 공의회 들은 계속 삼위일체설을 지지하면서 나머지를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이러한 이단 논쟁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거의 일천년 이상 계속되는 종교적 화두가 됩니다.

3. 교부들이 등장하여 교리를 확립하다.

이러한 크리스트교의 교리 논쟁과 이념 위기 속에서 초기의 교회를 굳건히 지킨 사람들을 <교부>라고 부릅니다. 교부들은 이교도, 이단설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정통적인 신앙, 교리를 확립한 사람들이죠.

교부들은 삼위일체설 이후, 기독교 철학을 완벽하게 정리하여 이단파들의 도전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교부들은 교회의 철학적 전사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철학에서 플라톤을, 헬레니즘 철학에서 스토아 철학을 가져와 단단한 신학적 철학인 <교부 철학>을 완성합니다.

이 교부들 중 가장 위대한 교부라 일컫게 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참회록을 쓴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실 초기에는 교회를 싫어하여 도망다니고, 가장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에서 참회한 이후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단파와의 논쟁에서 정결한 논리로 상대파를 굴복시켜가며 기독교 철학을 확립합니다.

먼저,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은 유명합니다. 도나투스파는 신앙을 버린 성직자가 관련된 성사는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이란 것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따져가며 도나투스파를 무력화 시킵니다.

또, 로마가 이민족에게 당하는 것은 전통적 신앙을 버리고 낮선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로마인들의 주장을 신국론에서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그의 논리정연함은 기독교적이라기 보다 철학적인 부분이 많지만, 그 철학은 모두 신앙심에서 우러나오고 있기에, 모두가 수긍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4.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의 역사적 의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후대 역사에 많은 의미를 끼치는 일종의 <성경>입니다. 실제,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일 뿐이며,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것을 잘 버무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신국론의 전반부 이야기는 로마의 약탈 이야기입니다. 로마가 이민족에게 약탈당하는 것을 로마인들이 기독교인탓으로 돌리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조목조목 제시합니다. 기독교인은 경건하며, 참된 신앙을 누릴 줄 알며, 사랑할 줄 알며, 계율을 지킬 줄 압니다. 반대로 로마인들은 향락적으로 변했으며, 타락했고, 개인적 야망만을 따지며, 로마법의 이상을 잊었습니다. 황제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크리스트교의 위대함도 있지만, 반대로 로마인들의 어리석음도 요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신국론의 후반부는 크리스트교의 역사관과 입장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크리스트교의 역사관은 고대적 순환사관을 탈피하는 <기독교적 종말론>입니다. 고대 투키디데스 등의 역사학자들은 모든 역사는 비슷한 상황이 돌고 돌기 때문에,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알고 있으면 훗날 비슷한 역사적 상황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고대 <순환사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트교의 역사관은 역사의 순환성을 완전 부정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단순히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신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투쟁이 곧 <역사>로 봅니다. 인류는 아담과 이브 이후에 원죄에 대한 타락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구제를 받기 위한 투쟁이 곧 인생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창세기>라는 시작이 있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이 있으므로, 아주 동적이고 극적인 전개가 곧 역사입니다. 역사는 순환되지 않고,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종말>이 옵니다.

이러한 사상은 곧 중세 교회와 신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였습니다. 이로서 교부철학으로 크리스트교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의 한페이지가 완성된 것입니다.

그의 핵심 사상은 인류가 아담 이후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원죄론>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있어 인간에게는 의지가 없으며 신만이 구원에 대한 자격을 갖는다는 <의지의 예속성>입니다.

실제 그의 사상은 대부분 중세 철학의 기본이 되지만, 원죄론과 의지의 예속성은 중세철학에서 완전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교황을 필두로하는 중세사회에서는 <신의 의지>보다는 <성직자의 권능>과 <교구의 자율성>이 강조된 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원죄론>은 교황에 의한 <구원의 전달>로 이론이 바뀌게 됩니다.

그의 원죄론과 의지의 예속성이라는 교부의 기본 이론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은, 근대 종교 혁명기의 루터, 칼뱅이였습니다. 루터의 <원죄론>과 <성경지상주의>, 칼뱅의 <예정설>등은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들은 그 이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중세 <교황파>와 유혈이 낭자한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이 파트는 종교사가 아닙니다. 역사적인 부분이니까 종교적으로 덤비지 마세요. 난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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