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세의 발전 5 - 13세기 말 영국사 : 의회정치가 시작되다
중세 영국사를 계속 이어서 포스팅 합니다. 이번이 5번째로군요. 지난 장까지 우리는 중세 영국이 9-12세기까지 끊임없이 왕권이 성장하고 있었음을 정리했었습니다. 하지만, 존왕이 집권한 13세기에 영국은 왕권이 위축되면서, 의회에 의해 제약당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원래 대륙보다 강력한 왕권을 가진 영국은 왕권과 의회권이 타협점을 찾기 시작하면서 영국 특유의 의회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힙니다. 13세기 영국사에 대한 내용을 이번에는 의회제도라는 키워드로 정리해 봅시다. 1. 존왕 이후 왕권은 추락하다. 지난 포스트에서는 대헌장 63조와 존왕의 실정을 논하면서, 강력했던 영국 왕권이 귀족권에 의해 제약당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존왕 이후 헨리 3세 시기에는 더욱 왕권이 약해지면서 이제 <봉건귀족>들의 권한이 왕권을 능가하기도 합니다. 당시, 시몽드 몽포르는 왕권이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귀족들을 연합한 뒤 귀족지배를 실시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영국 최초의 의회인 <시몽드 몽포르 의회>의 출현 배경입니다. 2. 에드워드 1세의 왕권 강화 노력 그러나, 헨리 3세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에드워드 1세는 시몽드 몽포르를 전쟁으로 격퇴하고, 다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한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9세기 이후 영국의 수많은 정치와 개혁을 보았지만, 모든 정치의 공통적 키워드가 <재정권>, <재판권>이었습니다. 대헌장의 핵심 12조, 39조의 문서 내용도 바로 재정권, 재판권이었죠. 에드워드 1세의 개혁 역시 이 재정권, 재판권을 다시 <귀족에게서 왕에게로> 귀속시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에드워드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국왕이 행정권을 직속하여 관장하면서, 관료들의 행정권을 분화시키고 전문화시켰습니다. 즉, 기존의 <왕실회의>는 봉건귀족의 영향력이 강대하므로 권한을 축소시켜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대신 국왕직속의 전문적 관료군을 육성한 것이지요. 이 전문관료군의 핵심은 재정 담당관, 재판담당관이었습니다. 즉, 재무관, 법관을 국왕이 선발하여 그들을 장악함으로서 12세기 헨리 1세기의 강력한 왕실재정과 왕실 재판권을 부활하려는 것이었죠. 특히, 재판권 확대로 인해 다양한 재판제도가 등장합니다. 신하들의 민사소송을 왕실재판소에서 처리하는 <민사재판제도>, 국왕과 관련된 모든 재판을 왕실재판소가 처리하는 <왕좌재판소> 등이 등장한 것입니다. 더불어 에드워드 1세는 영토확장을 통해 존왕기 잃었던 왕령 회복에 힘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프랑스 북부는 필리프 2세 이후 강력한 전제군주들이 대륙을 지배하는 관계로, 프랑스 북부는 영토확장보다는 영토수성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웨일즈 지방을 정복하는 등 영국 내 여러 섬을 통일하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끝내 병합하지 못하고 독립을 유지합니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 1세 때 가장 중요한 업적은 <모범의회>라는 영국의 공식 의회가 출범한 일입니다. 모범의회는 원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 병합을 위한 자금 마련으로 만든 의회입니다. 원래 만들 때에는 프랑스를 모델로 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 필리프 2세가 <삼부회>를 만들어 성직자, 귀족, 평민에게 과세를 걷고, 교회 재산권을 압수하여 국왕권 강화에 이용한 것을 보고 만든 것이죠. 즉, 모범의회도 귀족 및 성직자를 포함한 계층회의였고, 그 초기 목적은 국왕이 과세권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모범의회를 열자 귀족, 상인 등은 <의희의 승인없는 과세란 없다>면서 왕권에 항명하기 시작합니다. 에드워드 1세는 결국 의회와 타협하여 의회에게 어느 정도 의결권을 주는 선에서 의회의 권리를 인정하였습니다. 3. 영국 의회의 역사 그럼 지금까지 9-13세기를 거치면서 다룬 영국 의회에 대한 내용들을 한 번 총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최초의 회의기구로 <위탄게모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게르만사회의 부족적 유습이 남아있는 회의체로 초기 지배집단이 의견을 나누던 회의였습니다. 9-10세기 경이었죠. 마치 삼국시대의 화백, 정사암, 제가회의 등을 연상시키는 회의입니다. 다음으로 노르만 왕조의 지배기에는 왕실의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의회라기 보다 당시 강력한 절대군주인 정복왕 윌리엄의 사적기구로 이용된 측면이 있는 기구입니다. 따라서 이당시 의회란 주대표, 도시대표 등이 전혀 참석하지 못하는 중앙 지배층의 의결기구였죠. 12세기 헨리 1세기에는 가장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면서 영국 <보통법>이 성립된 시기입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왕실회의가 있으나, 국왕에 귀속되었습니다. 또 관습법이 있으나, 국왕의 주법정이 더 큰 힘을 발휘하여 영국 사회가 국왕의 법에 의해 통치되는 효율적인 사회였습니다. 13세기에 귀족들이 왕권을 제약하면서 왕의 사적 기구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시민의회>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최초의 의회가 존왕 이후 약해진 왕권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았던 시몽드 몽포르의 의회입니다. 이 의회는 시민, 귀족 등의 다양한 지지를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의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가 몽포르를 죽임으로서 이 의회는 단명하였죠. 1. 각 주당 기사를 2인씩 선출한다. 이 의회의 구성인원을 보면 결국 고위성직자와 귀족, 시민대표, 기사로 이루어진 3층 계급회임을 알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1세기에는 본격적인 영국의회로 <모범의회>가 출현합니다. 모범의회의 목적인 스코틀랜드를 점령하려고 한 에드워드 1세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연합하려고 하였습니다. 에드워드 1세는 당시 프랑스의 효율적인 의회인 <삼부회>를 보면서 성직자, 귀족, 평민에 대한 과세가 가능하다고 여긴 듯 싶습니다. 따라서 에드워드 1세는 몽포르 회의의 방식 + 삼부희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의회를 구성했습니다. 1. 각 주마다 기사 2인씩을 선출한다. 이것은 프랑스 필리프 2세가 삼부회로 교회재산권을 빼앗아온 것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따라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의 귀족들은 프랑스가 한번 당한 상황을 알고 있었고, 오히려 의회를 왕권 견제 기구로 활용하려고 하였습니다. 귀족들은 의회가 전 계층을 대변하는 만큼, 국왕도 의회의 승인없는 과세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며, <대헌장>의 조항을 들고 나옵니다. 결국 에드워드 1세는 제대로 된 조세권을 확보하지 못하였고, <의회>는 국왕을 견재하는 기구이자, 국사를 논하는 핵심기구로 자리잡게 됩니다. 모범의회는 <재정권>에 대하여 자율적인 권한을 일부 획득한 뒤, 법률의 제정 및 보통법의 조항 분쟁 해결 등의 <재판권>에 대한 권한도 행사합니다. 결국 이 <모범의회>는 국왕과의 수백년 걸친 대립 문제인 <재정권> , <재판권> 관련 문제를 국왕이 아닌 <의회중심>으로 끌어오는데 일조하였습니다. 단, 이러한 <의회중심>이란 시민의회가 아닌, <지배층>의 의회라는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모범의회는 포랑스 3부회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프랑스 3부회는 고위성직자, 귀족, 상층민으로 3계급을 나누었지만, 모범의회는 성직자와 귀족을 1신분으로 묶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2,3신분이 프랑스와 다릅니다. 2신분은 하족귀족이거나 몰락귀족인 기사계급이었고, 3계급은 도시의 상인과 중산층이었습니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2신분, 3신분이 엄청난 특권 계급이 아닌 관계로, 2,3신분은 1신분과는 다른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즉, 1신분에 대항할 2-3신분의 연합세력으로 의회가 양분되어 훗날 상원, 하원으로 나눌 수 있는 영국의 양원제도의 기반이 여기서 마련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영국 중세사 5회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다음 파트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 영국사 파트는 14세기 영국사로서 에드워드 3세를 중심으로 한 중세말 영국의 변화를 다뤄보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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