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의 초기 미숙한 외교와 구토지설
춘추가 훈신 사간과 함께 고구려에 사절로 가는데 대매현에 이르니 고을 사람인두사지 사간이 청포 300보를 주었다. 고구려의 지경 안으로 들어가니 고구려왕이 태대대로 개금을 보내어 맞아 객관을 정해주고 잔치를 베풀어 우대하였다. 누가 고구려 왕에게 고하기를 [신라 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온 것은 우리 형세를 살펴보려는 것이오니 왕은 도모하시어 후환을 없애소서] 라고 하였다. 왕은 무리한 질문을 하여 춘추가 대답하기 어렵게 하여 욕을 보이려고 일러 말하기를,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라고 하였다. 춘추가 대답하기를, [국가의 토지는 신하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 라고 하였다. 왕이 노하여 춘추를 가두고 죽이려 하여 아직 수행하지 않았는데, 춘추가 왕이 총애하는 신하 선도해에게 청포 300보를 비밀히 주었다. 도해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한창 술이 무르익을 무렵 우스갯소리로 말하되, [그대는 일찍이 거북과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는가?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병을 앓았는데 의원의 말이 토끼 간을 얻어 약을 지으면 치료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ㅉ힐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 때 한 거북이가 용왕에게 아뢰어 자기가 토끼 간을 얻을 수 있노라고 하였다. 거북이는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바다 속에 하나의 섬이 있는데 맑은 샘물과 흰 돌이 무성한 숲, 아름다운 열매가 있으며 취위와 더위도 없고 매나 새매가 침입하지 못하니 네가 가가만 하면 편히 지내고 아무 근심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이에 토끼를 등에 업고 헤엄쳐 2-3리쯤 가다가 거북이 토끼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딸이 병들었는데 토끼 간이 있어야 약을 짓기 때문에 수고로움을 무릎쓰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라 하였다. 토끼가 아아 나는 신명의 후예라서 능히 오장을 꺼내어 씻어 넣을 수가 있다. 일전에 속이 좀 불편한 듯하여 간을 꺼내 씻어서 잠시 바위 밑에 두었다. 너의 감언을 듣고 바로 온 지라 간이 아직도 그곳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져오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너는 구하는 것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어찌 이쪽저쪽에 다 좋은 일이 아니냐. 거북이 그 말을 믿고 언덕에 오르자마자 토끼는 풀 속으로 도망치며 거북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리석기도 하구나. 어찌 간 없이 사는 자가 있을 것인가. 거북이 멍청하여 아무 말도 없이 물러갔다고 한다 ] 라고 하였다. 춘추가 그 말을 듣고 의미를 알게 되었다. 왕에게 글월을보내어 말하기를, [ 두 영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면 우리 왕께 청하여 돌려드리게습니다. 내 말을 믿지 못한다면 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 하나 왕이 그제야 기뻐하였다. 삼국사기 권 41, 열전 1 김유신 상 ------------------------------------------------------------------------------------- 사료해석 : 초기의 김춘추의 외교가 상당히 어설펐음을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죽령 서부의 땅을 요구하며 김춘추를 억압했는데, 김춘추는 정직한 외교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외교술이 발달한 고구려 신하 선도해가 보기에 딱한 일이지요. 김춘추는 국제적 안목이 없었던 것이지요. 선도해의 말을 통해 억류당하던 김춘추는 비로서 국제 외교의 진실은 정의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으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간파하여 그것을 이용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것임을 알게됩니다. 이후 당나라와의 외교에서 김춘추는 적절한 외교술로 군대 지원을 받게 되며 이것이 삼국통일의 큰 밑거름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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