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신과 흑치상지의 부흥운동
이에 손인사와 유인원, 김법민(문무왕)이 육군을 이끌고 나가 유인궤, 두상, 부여륭과 웅진백강에서 합류하였다. 백강 입구에서 왜인을 만나 네 번을 싸워 다 이겨 100척을 불태우고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다. 부여풍은 탈출하여 달아나고 거짓 왕자 부여층승과 충지 등은 무리를 이끌고 왜인과 함께 항복했다. 우두머리 장수 지수신만은 임존성에 거하여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에 앞서 소정방이 백제를 깨뜨렸을 때, 우두머리 사타상여와 흑치상지가 흩어져 험한 곳에 의거하여 복신과 호응하였는데, 모두 항복하였다. 지수신도 결국 처자를 거느리고 고구려로 달아나니 백제의 나머지 무리가 모두 평정되었다. 손인사 등은 귀국하고, 유인궤는 조칙에 따라 군대를 통수하고 머물러 지켰다. 신당서 권 108 열전 33 유인궤 조 ------------------------------------------------------------------------------------- 사료해석 : 마지막 백제 부흥운동의 잔당이 처리된 것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사타상여는 백제 사비시대 유력 귀족인 사택씨의 일원으로 파악됩니다. 흑치상지는 유인궤에게 항복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토번, 돌궐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는 장군이 됩니다. 지수신은 소수 결사대로 드라마틱한 항쟁을 했으나, 결국은 중과부족으로 고구려로 망명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은 끝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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