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산의 회맹
문무왕이 당나라 칙사 유인원과 웅진도독 부여룽과 더불어 웅진 취리산(공주 연미산)에서 화친을 맹약하였다. 당 고종이 부여륭에게 명하여 본국에 돌아가 나머지 무리를무마하는 한편 신라와 화친하게 하였다. 이 때 백마를 희생으로 삼아 서맹을 약속했는데, 천지의 신과 천곡의 신에게 제사하고 피를 입술에 발랐다. 삼국사기 권 6, 신라본기 6 문무왕 5년(665) ------------------------------------------------------------------------------------- 사료해석 :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하면서 당나라는 자신들의 인질인 부여의 왕자 률을 웅진 도독에 임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신라의 백제 포용정책을 적극 견재하면서 당나라가 백제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부여륭과 문무왕 사이에 화친을 맺을 것을 당나라가 강요하는 데, 이것이 바로 취리산의 회맹입니다. 신라 문무왕은 삼국통일과 국내 체제 정비를 위해 일단 당나라와 대립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삼국통일 후에는 적극적인 대당 전쟁을 통해 신라의 생존을 지켜 나가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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