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

일본사 이야기 2 - 신화로 본 일본과 야마타이국에 대한 논쟁 신화로 본 일본과 야마타이 국 1. 일본의 신화 일본의 신화는 일본서기에 쓰여 있습니다. 일본서기는 니혼쇼키라고 일본식으로 많이 부르는데, 이 일본서기의 이야기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많고, 중국측 기록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으며, 특히 한반도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부분에서는 당시 한반도 정세와 너무 안 맞아서 위작이란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사료의 신빙성이 없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일본의 정사인 만큼 이 책을 인용하여 신화를 서술해볼까 합니다. 어짜피 신화란 있었던 사실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 사회상을 알려주는 key의 역할을 하는 편이니까요. 천지가 처음 태어날 때 시작인 어둠이었고, 무질서였다. 이 어둠과 무질서 속에서 양과 음이 생겼다. 이 양과 음은 각각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 더보기
일본사이야기1- 죠몬시대, 야요이 시대 일본 문명의 탄생 1. 1만년전의 일본 - 죠몬 시대 일본의 역사는 죠몬시대부터 시작합니다. 조묜시대를 우리말로 하자면 석기시대라고 보면 됩니다. 죠몬시대는 약 1만년전도 계속되었는데, 보통 석기시대가 그러하듯 평등사회였습니다. 수렵과 사냥을 통해 점차 무리사회가 발전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땅에 구멍을 판 형태의 집인 수혈식 집을 지어 마을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일본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35만년 전인데, 일본측은 50만년 전까지 그 연대를 끌어올리려고 시도중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재 일본인의 조상이 나타난 것은 3-4만년전의 일입니다.(일본의 현생인류의 조상을 유럽의 크로마뇽인 정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은 것이죠) 일본인은 고몽골인종에 속하는데, 약 1만년전 지구에 빙하기가 끝나고 홍적세가 .. 더보기
유럽중세사 9 -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도 - 장원제도 편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도 - 장원제도 편 1. 중세 장원의 구조 장원은 중세사회의 일상적인 현실 생활이 영위되는 농촌적인 자급자족 사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중세시대는 보통 하나릐 촌락이 하나의 장원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럴 경우의 장원 구조를 보면, 일단 장원의 중심지역에는 영주의 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중세가 크리스트교 사회인 만큼 보통 근처에 교회가 존재합니다. 그 외에는 제분소, 제빵소 등 시설물들이 존재하는 데, 이것은 영주가 농노들에게 사용료을 걷을 수 있는 주요 조세원 중의 하나압니다. 그리고 도로변에는 농가가 있으며, 근처에는 경작지와 공동 목장등이 있습니다. 장원에서 농사를 짓는 농작지는 보통 삼포제로 운영되는데, 이것은 당시 비료기술이 부족하여 지력이 부족하므로 토지를 3분하여.. 더보기
중세유럽사8 -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도 - 주종관계와 기사 편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도 - 주종관계와 기사 편 1. 봉건제도에서 주종관계의 개념 이번 장에서는 봉건제도에서의 계층구조를 한 번 다루어 보겠습니다. 봉건제도에서의 주종관계란 토지를 받은 봉신이 상위 주군에게 신서를 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군은 신서를 한 봉신에게 봉토를 하사하였는데, 여기서 하사한 봉토란 단순히 토지 개념이 아니라 불입권, 영주권 등 총체적인 자율적 토지 운영을 보장한 토지개념을 말합니다. 따라서 봉건제도는 주군이 봉신에게 토지를 하사한 이후 그 토지에 대한 간섭을 전혀 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봉신은 계약에 따라 주군에게 해주어야 할 의무만 해주면 자신의 자율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봉건제도에서의 주군과 봉신은 당사자간.. 더보기
중세유럽사7 - 중세 봉건제도의 기원 유럽 중세사회의 봉건제도 - 기원 1. 봉건제도를 파악하기 위한 2가지의 제도 유럽의 봉건제도는 충성과 의무를 수행한다는 계약적 주종관계라는 주종관계의 측면과, 농노제에 입각한 장원을 구성하였다는 장원제도라는 측면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주종관계와 장원제도는 따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2가지가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봉건제도라고 하면 국왕 - 제후 - 기사 등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형 주종관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주종관계를 존재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것은 장원에서 농노들의 자립적 생활 경제 기반이 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봉건제도를 해석할 때, 이것을 그 사회 전반에 확장적으로 사용하면 사회 전반에 걸친 .. 더보기
온달 장군전 온달 장군전 원문 : 김부식의 삼국사기, 온달편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의 사람이다. 용모가 못셩겨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만은 순박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에 해진 신으로 거리를 헤매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 이라고 놀렸다. 평원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자 왕이 농담으로 말하였다. "네가 늘 울며 시끄럽게 하니, 커서는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가 되지 못할 것이고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겠다." 딸이 16살이 되자,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반대하며 말하였다. "아바마마께서 늘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디스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찌 전에 하신 말씀을 바꾸시는 것인가요? 무릇 필부도 한번 한 약.. 더보기
연지곤지는 생리중이라는 표시이다? 연지 곤지는 생리중이라는 표시?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소개된 글들은 여러 책에서 뽑은 연지곤지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1. 오늘은 임금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연지는 볼과 입술에 붉게 칠하는 전래의 화장품이다. 연지를 이마에 둥그렇게 찍어 바르면 그것이 곤지가 된다. 그런데 연지 곤지 찍기는 화장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뚜렸다. 색깔도 너무 선명하고 모양도 두드러진다. 왜 이런 화장을 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연지곤지가 원래 생리중이라는 표시였다는 설이다. 여염집 아녀자들이 그런 표시는 할 필요는 없겠고, 임금의 여자인 궁녀들이 '오늘은 임금님을 모시지 못합니다'라는 표시로 빰에 연지를 발랐다는 것이다.. 더보기
중국 현지 기념품에 나타난 고구려사 왜곡 더보기
고려사절요의 태조 왕건 평가 휘(諱)는 건(建)이며, 자(子)는 약천(若天)이요, 성은 왕씨(王氏)이다. 한주(漢州) 송악군(松嶽郡) 사람으로 금성태수(金城太守) 융(隆)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당(唐) 나라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 정유(877) 정월 14일 병술에 태조를 송악 남쪽 사제(私第)에서 낳으니, 신비한 광채와 자줏빛 기운이 종일토록 방 안에 비치고 뜰에 가득히 서리고 둘러 있었는데 형상이 마치 교룡(蛟龍)과 같았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용모는 용안(龍顔)과 일각(日角)이며 턱이 풍만하고 이마가 넓었다. 기우(氣宇)와 도량이 크고 깊었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고 컸으며, 너그럽고 후하여 세상을 구제할 도량이 있었다. 왕위에 있은 지는 26년이고, 수(壽)는 67세였다.. 더보기
고려사절요를 올리는 전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영집현전 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신(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 領集賢殿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臣) 김종서(金宗瑞) 등은 삼가 새로 《고려사절요》를 정서해 올립니다. 신 종서 등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말씀을 올립니다. 생각건대 편년체(編年體)는 좌씨(左氏)의 《춘추전(春秋傳)》에서 시작되고 기전체(紀傳體)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시작되었는데, 반고(班固)의 《후한서(後漢書)》 이후로 역사를 찬술한 사람이 모두 사마천의 사기를 조술(祖述)하여 어기지 않은 것은 그 규모(規模)가 크고 넓어서 저술할 내용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글이 번잡하고 읽기 어려운 결점을 면할 수 없으니, 이것이 서로 장점(長點)촵단점(短點)이 있어서 사가(史家)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