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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본기

고중세 역사학의 발달 과정 고중세 역사학의 발달 과정 1. 삼국시대 : 역사학이 성립되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제대로 된 역사학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의거할 때,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역사서를 편찬한 시기는 삼국시대로부터 비롯됩니다. 삼국시대의 역사편찬은 왕권의 이데올로기 강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역사서를 편찬한 시기가 대체로 강력한 를 확립하는 시기였습니다. 고구려의 유기는 5c 고구려의 강성기에, 백제의 서기는 근초고왕의 전성기에, 신라의 국사는 신라 6세기 진흥왕기에 각각 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사학이라는 학문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을 을 홍보하여 왕권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당시의 역사서들은 남아있는 것들이 없기 때문에 내용을 자세히 알 .. 더보기
6세기 말 고구려와 백제의 바람직하지 못한 대립관계 고구려와 백제의 바림직하지 않은 대립 위덕왕 45년(598) 9월, 왕은 장사 왕변나로 하여금 수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왕은 수나라가 요동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군의 길잡이가 되기를 청하였다. 황제가 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왕년에 고구려가 공물을 바치지 않고 산하로서 예가 없어 장수에게 명하여 죄를 꾸짖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고원(영영왕)의 군신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하여 죄를 청하기에 짐이 이미 용서하였으니 정벌할 수가 없다} 수나라는 사신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고구려가 이 사실을 알고 군사로써 국경에 쳐들어와 약탈하였다. 삼국사기 권 27, 백제본기, 위덕왕 45년 -------------------------------------------------.. 더보기
일본서기 니혼쇼키(일본서기) 30권. 이 밖에 계도(系圖) 1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덴무[天武]왕의 명으로 도네리친왕[舍人親王]이 중심이 되어 680년경 착수, 720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 6국사(六國史) 중의 첫째로 꼽히는 정사(正史)로서 왕실을 중심으로 하여 순한문의 편년체(編年體)로 엮었으며, 편찬의 자료로는 제기(帝紀), 구사(舊辭), 제가(諸家)의 전승기록(傳承記錄), 정부의 공식기록, 개인의 수기(手記), 사원(寺院)의 내력 등을 기초로 하고, 특히 《백제기(百濟記)》 《백제본기(百濟本記)》 《백제신찬(百濟新撰)》 등 한국의 사료(史料)와 《위서(魏書)》 《진서(晉書)》 등 중국의 사서(史書)를 병용하고 있어, 일본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저술한 역사서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