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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황초령비 황초령비 8월 21일 계미에 진흥태왕(眞興太王)이 관경(管境)을 하고 돌에 새겨 기록하였다. 세상의 도리가 진실에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함이 서로 다툰다. 제왕(帝王)은 연호를 세워 스스로를 닦아 백성을 편안히 하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짐은 태조(太祖)의 기틀을 이어받아 왕위를 계승하여, 몸을 조심하고 스스로 삼가면서 할까 두려워하였다. 하늘의 은혜를 입어 운수를 열어보여, 명명(冥冥)한 중에서도 신지(神祗)에 감응되어 사방으로 영토를 개척하여 백성과 토지를 널리 획득하니 이웃나라가 신의를 맹세하고 화호(和好)를 요청하는 사신이 서로 통하여 오도다. 아래로 하여 신·구민을 육(育)하였으나 오히려 왕도의 덕화가 있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에 무자년 가을 8월에 관경을 순수하여 민심을.. 더보기
승려 혜량 승려 혜량 신라 진흥왕 12년(551) 신미(辛未)에 왕은 거칠부(居柒夫)와 구진 대각찬(仇珍大角瑗), 비태 각찬(比台角瑗), 탐지 잡찬(耽知?瑗) 등 8명의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백제 군사들이 먼저 남평양(南平壤)을 격파하자, 거칠부가 거느리는 신라군은 승리의 기세를 타고 죽령(竹嶺) 이북 고현(高峴) 이남의 10개군을 점령하였다. 이 때에 혜량법사(惠亮法師)가 무리를 이끌고 길가에 나타났다.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 군례(軍禮)로 대하고 말하기를 "옛날 유학할 때에 대사님의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뜻밖에 뵈오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고 하니 법사가 이르기를 "지금 우리 나라의 정사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아니하니 그대의 나라로 가기를 원한다"고 하.. 더보기
고대의 전쟁 노비 관련 사료 고대의 노비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보병과 기병 2만을 거느리고 와서 치양(황해도 백주)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근초고왕)이 태자에게 군사를 주니 곧장 치양으로 가서 고구려군을 급히 깨뜨리고 오천명을 사로잡았다. 그 포로를 장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 삼국사기 - 가야가 배반하니 왕(진흥왕)이 이사부에게 토벌하도록 명령하고, 사다함에게 이를 돕게 하였다. 사다함이 기병 오천명을 거느리고 들이닥치니 일시에 모두 항복하였다. 공을 논하였는데 사다함이 으뜸이었다. 왕이 좋은 농토와 포로 이백명을 상으로 주었다. 사다함은 세 번 사양하였으나 왕이 굳이 주자 받은 사람은 놓아주어 영민으로 만들고, 농토는 병사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를 보고 나라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 삼국사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