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한서 지리지편
진秦나라가 설치하여 유쥬幽州에 예속시켰음. 55,972戶. 인구는 272,539人. 현縣은 18. ○ 요동군遼東郡(秦나라때 설치함. 遼東城 동남부의 遼河 동쪽임) (1) 양평襄平: 목사관牧師官이 있음. 망莽은 이것을 창평昌平이라고 했다. (2) 신창新昌 (3) 무려無慮: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렸다. 사고師古는 말하기를, 무려는 즉 의무려醫無閭임. (4) 망평望平: 대요수大遼水는 새방 밖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안시安市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 갔다. 물의 길이는 1,250리임. (5) 방房 (6) 후성侯城: 중부도위中部都尉가 다스렸다. (7) 요수遼隊: 망莽은 이것을 순목順睦이라고 했고, 사고師古는 대隊를 수遂라고 발음했다. (8) 요양遼陽: 대양수大梁水는 서남쪽으로부터 흘러 요양에 이르러 요遼로 들어 갔음. 망은 이것을 요음遼陰이라고 했다. (9) 검독儉瀆: 응소應邵가 말하기를, 이것은 조선 왕 만滿이 도읍했던 곳이다. 물의 험한 것을 의지해서 자리잡았다 해서 검독儉瀆이라 했다. 신찬臣瓚은 말하기를, 왕검성王儉城은 낙랑군 패수 동쪽에 있기 때문에 이곳부터 검독 이라 했다 고 했다. 사고師古는 찬瓚의 말이 옳다고 했다. (10) 거취居就: 실위산室僞山과 실위수室僞水가 여기에서 나왔으니, 북쪽으로 양 평襄平에 이르러 대양大粱으로 들어갔음. (11) 고현高顯 (12) 안시安市 (13) 무차武次: 동부도위東部都尉가 다스리는 곳. 망莽은 무차를 항차桓次라고 했다. (14) 평곽平郭: 철관鐵官과 염관鹽官이 있음. (15) 서안평西安平: 망은 말하기를 이것을 부안평이라고 했다. (16) 문文: 망은 이것을 수정受亭이라고 했다. (17) 번한番汗: 패수沛水는 새방 밖에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다. 응소 應邵는 말하기를, 한수汗水가 새방 밖에서 나와서 서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다고 했다. (18) 답씨沓氏: 응소는 말하기를, 이것을 답수라고 했다.
○ 현도군玄 郡(전한前漢 무제武帝가 세움.옥저의 옛 땅임. 고구려 광개토왕 때 고구려에 병합됨) 한무제漢武帝 원봉元封 4년에 열었음. 45,000戶. 인구는 221,845명. 현縣은 셋 이다. (1) 고구려: 요산遼山은 요수遼水가 여기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흘러 요대遼隊에 이르러 대요수大遼水로 들어갔음. 또 남소수南蘇水가 있어 서남쪽으로 새방 밖을 지났다. 응소는 말하기를, 이것을 고구려호라고 했다. (2) 상은대上殷臺: 망은 하은下殷이라고 했다. (3) 서개마西蓋馬: 마자수馬 水는 서북쪽으로 흘러 들어갔고, 서남쪽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 군郡 둘을 지나고 길이가 2,100리 가 된다. 망은 이곳을 현도정玄 亭이라고 했다.
○ 낙랑군樂浪郡 무제 원봉3년에 열었음. 망은 이곳은 낙선樂鮮으로서 유주幽州에 붙였다고 했 다. 응소는 이곳이 옛날 조선국이라 했다. 62,812戶요, 인구는 406,748人. 운장 雲 이 있음. 현縣은 25. (1) 조선朝鮮: 응소가 말하기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했다. (2) 남감 (3) 패수沛水: 물이 서쪽으로 흘러 증지增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 망은 이 곳을 낙선정樂鮮亭이라고 했다. (4) 함자含資 (5) 대수帶水: 서쪽으로 흘러 대방帶方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다. (6) 점제 蟬 (7) 수성遂成 (8) 증지增地: 망은 이곳을 증토增土라고 하였다. (9) 대방帶方 (10) 사망駟望 (11) 해명海冥: 망은 이곳을 해환海桓이라고 했다. (12) 열구列口 (13) 장삼長岑 (14) 둔유屯有 (15) 소명昭明: 남부도위南部都尉가 다스림. (16) 누방鏤方 (17) 제해혼미提奚渾彌 (18) 탄열呑列: 분여산分黎山, 열수列水가 여기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흘러 점 제 蟬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갔는데 길이가 820리이다. (19) 동이東 (20) 불이不而: 동부도위東部都尉가 다스림. (21) 잠태蠶台 (22) 화려華麗 (23) 사두매邪頭昧 (24) 전막前莫 (25) 요조夭祖 연燕나라 땅은 미尾와 기箕(28숙宿의 하나. 모두 동방에 있는 별 이름으로 여기에서는 동쪽을 말함)에서 나뉜 들이다.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하고 나서 소공召公을 연에 봉했다. 그 뒤 36대가 되는 동안 그는 육국六國과 함께 왕이라고 일컬어, 동쪽으로는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 요동이 있고, 서쪽으로는 상곡上谷, 대군代郡, 안문雁門을 가졌으며, 남쪽으로는 탁군 郡의 이용성과 범양을 얻었고, 북쪽으로는 신성, 즉 옛날의 안탁현, 양향, 신창과 발해의 안차가 있으니 이것은 모두 연나라에서 나뉜 땅이다. 낙랑, 현도도 역시 여기에 소속되어야 할 것이다. 연이 왕이라고 일컬은 지 십대가 되었을 때 진나라가 육국六國을 멸하고자 했다. 이 때 연왕燕王의 태자 단丹이 용사 형가荊軻를 보내서 서쪽으로 가서 진왕秦王을 찔러 죽이려 했으나 일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베임을 당했다. 이리하여 진나라에서는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멸해 버렸다. 이 당시의 계 는 남으로 제나라와 조나라에 통하며 발해와 갈석蝎石 중간에 있는 한 도회都會였다. 처음에 태자 단은 손님으로 용사들만 집에서 기르고 있어 후궁의 아름다운 여자들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 까닭에 백성들도 거기에 화하여 습관이 되어 가지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러하다. 손님들을 맞으면 자기 아내를 주어 모시고 자도록 하고, 시집 가는 첫날 밤에도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이것을 도리어 영화롭게 여겨 왔는데, 뒤에는 차츰 조금씩 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종시 아주 고치지는 못했다. 이리하여 그들의 풍속은 어리석고 사납고 생각이 적어 경박하고 위엄이 없었다. 그래도 역시 장점도 있기는 했으니, 남의 급한 일을 보면 용감하게 뛰어드는 성질이 있었으니 이것은 곧 단의 남긴 풍도이다. 상곡上谷으로부터 요동에 이르기까지 땅은 넓고 백성은 드물어 자주 오랑캐들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 풍속은 조趙나라 시대와 서로 비슷한데 생선과 소금.대추.밤 같은 것이 풍족히 났다. 북쪽으로는 오환烏丸, 부여夫餘와 틈이 있었고, 동쪽으로는 진번의 이로움을 사 들이고 있었다. 현도와 낙랑은 무제 때 설치했는데, 이것은 모두 조선, 예맥濊貊, 구려만이句驪蠻夷이다. 은殷나라의 도道가 쇠해지자 기자가 조선으로 가서 그 백성들을 예의에 힘쓰고, 농사짓고 누에 쳐서 길쌈 하도록 가르쳤다. 또 낙랑의 조선 백성들에게 금하는 법 팔조목을 만들었다. 그것은 대개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받는다. 도둑질을 한 자는 그것이 남자일 경우에는 그 집 남자 종을 만들고 여자일 경우에는 역시 여자 종을 만든다. 자기가 용서받고자 하는 자는 한 사람 앞에 오십만 냥을 내게 한다. 비록 용서를 받아 보통 백성이 될 때도 풍속에 역시 그들은 부끄러움을 씻지는 못한다. 아내를 얻는 데는 원수를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그 백성들은 종시 도둑질을 하지 않아서 대문을 닫고 자는 법이 없었다. 여자들은 모두 정조를 지키고 신용이 있어 음란하고 편벽된 짓을 하지 않았다. 그 지방의 농사 짓는 백성들은 대나무 그릇에 음식을 먹고, 도시에서는 관리나 장사꾼들을 본받아서 왕왕히 술잔 같은 그릇으로 음식을 먹는다. 군에서는 처음에 요동에 가서 관리를 데려 왔었다. 그들은 백성들이 물건을 숨기거나 감추어 두는 법이 없는 것을 보았으나 장사꾼들이 오면 밤에 도둑질을 하게 되어 풍속이 차츰 박해갔다. 지금에 와서는 법으로 금하는 것이 더 많아져서 육십여 조목이 되었으니, 어질고 착한 것의 감화야말로 귀한 것이다. 그러나 동이東夷는 천성이 유순해서 세 지방 밖의 사람들과 다르다. 그런 때문에 공자가 올바른 도가 행해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여 바다를 건너 구이九夷에 살고자 한 것이 까닭이 있다. 대체로 낙랑 바다 속에는 왜인倭人들이 살고 있어 나누어 백여 나라가 되는데 이들은 해마다 와서 물건을 바치고 뵙는다고 한다. 그 지방은 위危 사도四度로부터 두 육도六道에 이르는 곳을 석목析木의 다음 위치라고 하는데, 이곳은 연燕나라에서 나뉜 곳이다.(漢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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