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한서 조선전 편
조선왕 만滿은 연나라 사람이다. 연燕나라가 전성할 때로부터 일찌기 진번조선眞蕃朝鮮을 침략해서 자기 나라에 붙여 관리를 두고 요새를 쌓았었다. 그 뒤에 진나라가 연을 멸하자 요동 경계 밖을 소속시켰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그곳이 멀어서 지킬 수 없다고 해서 다시 요동의 옛날 요새를 수축하여 패수에 이르기까지로 경계를 삼아 연에 붙였다. 연왕 노관盧 이 반해서 흉노로 들어가자 만은 망명해 달아났다. 그는 무리 천여 명을 모아가지고 머리에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달아나 새방 밖으로 나가 패수를 지나 진나라의 옛 공지空地인 상하장上下障에 살았다. 여기에서 그는 차츰 진번조선 오랑캐와 옛날 연나라, 제나라에서 망명한 자를 모아서 왕노릇하고 왕검에 도읍을 정했다. 마침 효혜고후孝惠高后 때를 당하여 천하가 처음 정착되자 요동태수는 곧 만에게 외신 자리를 주어서 새방 밖에 있는 오랑캐들을 막아 변방에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또 오랑캐의 군장君長이 천자께 들어와 뵙겠다고 하면 이를 금지하지 말도록 약속하려고 조정에 알렸더니 천자는 이를 허락했다. 이렇게 되어 만은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을 수가 있어 이것으로 그 곁에 있는 조그만 고을들을 침략하여 항복받으니 진번, 임둔이 모두 그에게로 붙었다. 이리하여 땅이 수천 리가 되었고, 이로써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에게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유인해 온 한나라에서 도망 온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도 한 번도 천자에게 들어가 보는 일이 없었다. 진번과 진국辰國이 글을 올려 천자를 보고자 해도 또 그에게 막혀 통하지 않았다. 원봉元封 2년에 한나라 사신 섭하涉何가 그를 책망하고 타이르려고 갔으나, 우거는 종시 천자의 조서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에 하何는 돌아가려고 국경에 이르러 패수에 다다랐다. 하는 갑자기 말을 달려 자기를 전송하려고 따라 나온 조선 비왕裨王 장長을 찔러 죽이고 즉시 패수를 건너 새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는 돌아가서 천자에게 보고하기를, "조선 장수를 죽였습니다."하니 천자는 그의 한 일을 가상히 여겨 아무런 말도 묻지 않고 하를 遼東東部都尉로 삼았다. 이로부터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내어 습격해서 마침내 하를 죽였다. 이것을 보고 천자는 죄인들을 모집해다가 조선을 쳤다. 그해 가을에는 또 누선장군 양복楊僕을 보내서 제나라로부터 발해로 건너가니 군사가 五만 명이었다. 한편 좌장군 순체荀 는 요동으로 나가서 우거를 쳤다. 이에 우거는 군사를 내어 험한 곳에서 막았다. 좌장군은 요동 사람을 군사로 많이 거느리고 가서 먼저 공격했으나 패해서 흩어졌다. 도망해 되돌아온 자도 많았는데, 이들은 모두 법에 저촉되어 참형에 처하여졌다. 누선樓船은 군사 7천 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王險에 도착했다.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누선의 군사가 적은 것을 탐지하고 곧 나가서 누선을 치니 누선의 군사는 패해 달아났다. 이에 장군 양복은 그 군사들을 잃고 산 속에 숨은 지 10여 일에 차츰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해 모았다. 좌장군은 조선 패수 서쪽 군사를 쳤으나 깨치지 못했다. 천자는 두 장수가 모두 싸움에 이롭지 못하다 해서 이에 위산衛山을 시켜 군사의 위세를 보이고 가서 우거를 타일러 보라 했다. 우거는 사자를 보자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과하고 항복하기를 원하여 [속여서 우리를 죽일까 두려워했더니 이제 신절信節을 보았으니 칭컨대 항복하겠습니다]했다. 이리하여 태자를 보내서 들어가 사례하고 말 5천 필과 군사 먹일 양식을 바치게 하여 무리 만여 명이 병기를 가지고 바야흐로 패수를 건너려 했지만, 사자와 좌장군은 그들에게 변이 있을까 의심이 났다. 그들은 [태자가 이미 항복했으니 사람들은 마땅히 병기를 갖지 말라]했다. 한편 태자도 역시 사자나 좌장군에게 거짓이 있지나 않을까 의심하여 드디어 패수를 건너지 않고 군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위산이 이 사실을 천자께 보고하자 천자는 위산을 베었다. 이 때 좌장군은 패수 위에 있는 군사를 깨치고 앞으로 성 밑에 이르러 성 서쪽과 북쪽을 포위했다. 누선도 역시 여기에 달려가 성 남쪽에 군사를 주둔시키니 우거는 성을 굳게 지키고 나가지 않았다. 이리하여 두어 달이 되도록 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좌장군은 본래 천자를 모시어 왔고 장차 연나라의 대를 이을 터이므로 몹시 우쭐거리는 판인데, 이 때 싸움에 이기고 보니 군사들까지 교만한 기운이 많았다. 한편 누선은 군사를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 이미 여러 번 패한 일이 있고, 또 먼젓번에 우거와 싸울 적에도 곤욕을 받아 군사를 잃은 터여서 그 군사를 잃은 터여서 그 군사들은 모두 두려운 마음을 가졌고, 장수들도 부끄러운 마음을 가졌었다. 이리하여 비록 우거를 포위는 했어도 언제나 화친할 의사를 가졌다. 이 때 좌장군이 공격을 서두르자 조선의 대신들은 비밀히 사람을 보내서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하기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말이 오고 가기만 하고 아직 결정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까닭에 좌장군이 자주 누선을 보고 조선군과 싸울 것을 말했지만, 누선은 조선이 항복한다는 약속을 이루고자 하여 여기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또 좌장군도 역시 몰래 사람을 시켜 틈을 타서 조선으로 하여금 항복하도록 종용하였으나, 조선은 이미 마음을 누선에게 주고 있었으므로 좌장군의 말에 응하지 않았다. 이러고 보니 두 장수들은 서로 마음이 맞을 리가 없었다. 좌장군은 혼자 생각하기에, 누선이 전에는 군사를 잃은 죄가 있었고, 이제 또 조선과 사사로이 좋게 지내는데도 조선이 여전히 항복하지 않고 있음을 보면 혹시 반간反間하는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여 자기 역시 쉽게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천자는 말하기를, [전에 장졸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기로 위산을 시켜 우거를 타일러 항복하게 했더니 일을 매듭 짓지 못하여 좌장군과는 계획이 서로 어긋나서 마침내 약속을 깨치게 되었었다. 그러던 터여서 이제 두 장수가 성을 포위했는데도 일이 이상하게만 되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오래도록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했다. 이에 제남태수濟南太守 공손수公孫遂를 보내서 가서 일을 바로잡도록 해서 편의대로 처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공손수가 도착하자 좌장군은 말하기를, [조선이 함락된 지 이미 오랬을 것이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대로 있는 것은 누선이 여러 번 약속을 어기고 싸우지 않은 때문이오] 하고 자기의 뜻을 낱낱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좌장군은 다시 수遂에게 말하기를, [이제 형세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조선을 취하지 않으면 큰 해가 될까 두렵소. 그것은 비단 누선뿐만이 아니라, 그가 또 조선과 함께 군사를 합쳐 우리를 치러 올 것이오] 했다. 이 말을 듣자 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절부節符를 가지고 누선장군을 불러 좌장군 군중에 들어가 일을 계획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놓고 즉시 좌장군 휘하 군사를 시켜 누선장군과 그 군사들을 잡아 결박하게 하고 사실을 천자에게 보고했다. 이리하여 천자는 수의 의견을 쫓았다. 이리하여 좌장군은 마침네 두 군대를 합치게 되었다. 그리고 급히 조선을 치기 시작했다. 이 때 조선 정승 노인路人과 한도韓陶, 니계상尼谿相 삼參, 장군 왕협王 등이 서로 의논하기를, [처음에 우리가 누선에게 항복하려던 것이 이제는 누선이 잡혀 버리고 홀로 좌장군이 군사를 합쳐 이제 싸움이 더욱 급하니 그를 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했다. 그러나 왕은 또 즐겨 항복하려 하지 안흥므로 한도와 협, 노인은 모두 도망해서 한나라에 항복했는데, 그 중에 노인은 중도에 죽었다. 원봉 3년 여름에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했다. 그러나 王儉城만은 함락되지 않고 있었다. 이 때 죽은 우거의 대신大臣 성기成己는 또 거듭 관리들을 공격했다. 이리하여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長과 항복한 정승 노인의 아들 최最를 시켜 그 백성들을 달래고 성기를 베니 이로써 드디어 조선이 평정되었다. 이에 진번, 임둔, 낙랑, 현도의 사군四郡을 두고 삼參을 봉하여 획청후 淸侯를 삼고, 한도韓陶로 추저후秋 侯를 삼고, 협으로 평주후平州侯를 삼고, 장長으로 기후幾侯를 삼았다. 한편 최근 그 아버지가 죽었고, 자못 공로가 있다 하여 저양후沮陽侯를 삼았다. 좌장군을 불러 들였으나 앉아서 자기들의 공로를 다투다가 서로 미워하노라 계교를 어그러뜨렸다 해서 기시棄市의 형에 처했고, 누선장군도 역시 군사가 먼저 열구列口에 이르렀으면 마땅히 좌장군을 기다려야 옳은데 제 맘대로 먼저 군사를 내었다가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 하여 의당 베일 것이나 용서해서 서인庶人을 만들었다. 찬贊에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옛 조상 때는 역대로 그 땅이 있었데. 주나라 아무리 쇠했어도 초나라 땅은 사방 五천 리는 되어 구천句踐은 여기서 패업覇業 이루었네. 진나라가 제후諸侯를 멸했어도 오직 초나라에는 진왕 王 있었네. 한나라가 서남쪽 오랑캐 베어도 유독 진왕만은 사랑받았네. 동東오가 나라 없어져 옮겨도 모든 유왕과 거고들은 오히려 만호후가 되었네. 세 방위 모두 열리니 모두 일 좋아하는 신하일세. 서남쪽 오랑캐는 당몽 사마상여에게서 일어나고 양오는 엄조 주매신에게서 어일났네. 조선은 섭하로 해서 대마다 융성해졌고 이로써 성공하여 부지런해졌네. 태종의 사랑하고 위로한 은덕 보면 이 어찌 예의로 부르고 덕으로 인도한 게 아니라 하랴.(漢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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