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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진서 사이전 숙신 편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진서 사이전 숙신 편

  숙신씨는 일명 읍루라고도 한다. 불함산 북쪽에 있는데 부여에서 육십일을 가야 할 만큼 먼 곳에 있다. 동쪽은 큰 바다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구만한국에 닿았으며, 북쪽은 약수가 끝이다.

  그 토지는 넓기가 수천 리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산 속이나 궁벽한 골짜기에 살아서 길이 험하고 좁아서 수레나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름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이면 굴 속에서 산다.

  아비가 죽으면 자식이 이어서 군장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굴이나 필묵이 없고 말만을 가지고 약속한다.

  말은 있어도 타지는 않고 다만 재산으로만 삼는다. 소나 양은 없고 가축 중에서는 되지를 많이 길러서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옷으로 입는다. 또 그 털을 짜서 모포를 만든다.

  그 곳에는 낙상이라는 나무가 있다. 중국에서 만일 성제가 서서 임금이 되는 일이 있으면 그 나무 가죽을 베껴서 옷을 해 입는다.

  그 곳에는 우물과 부엌이 없다. 기와로 사,오 되가 들 만한 그릇을 만들어 놓고 물을 받아 먹는다. 앉을 때는 반드시 걸터앉는다. 결터앉아서 발로 고기를 집어올려 먹는다. 겨울에 고기가 얼었으면 그 고기를 깔고 앉아서 따뜻하게 만들어가지고 먹는다. 그 곳에는 소금이 없다. 나무를 불에 태워 재를 만들어 가지고 잿물을 내서 그것을 소금 대용으로 먹는다.

  머리는 땋아 내리고 베로 치마를 만들어 걸친다. 그 길이는 한 자 남짓하다. 이것으로 앞과 뒤를 가릴 뿐이다.

  시집 가고 장가 갈 때가 되면 남자는 털깃을 여자에게 꽂아 주고 여자가 혼인을 응낙하려면 그 깃을 가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절차가 끝난 다음에 예를 갖추어 혼인을 지낸다. 여자는 정조를 지키지만 처녀는 음란한 짓을 하고, 젊은이를 소중히 여기고 도리어 늙은이를 천하게 여긴다.

  사람이 죽으면 그 날로 들판에 내다가 장사 지내 버리고 만다. 장사를 지내는 데는 나무를 얽어 조그만 곽을 만들어 놓고 돼지를 잡아 그 위에 올려 놓아서 죽은 사람의 양식으로 한다.

  성직은 흉악하고 사나와서 근심하고 슬퍼하지 않는 것을 숭상한다. 그래서 부모가 죽어도 곡하거나 울지 않는다. 우는 자는 씩씩하지 못하다고 친다. 도둑질을 한 자는 그 물건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두 죽인다. 때문에 들에서 살아도 서로 범하는 법이 없다.

  돌로 만든 활을 쓰고 가죽과 뼈로 만든 갑옷을 입는다. 나무로 만든 활은 크기가 삼척오촌이고 화살은 싸리나무로 만든다. 그 길이는 한 자쯤 된다.

  그 나라 동북쪽에 산이 하나 있다. 여기서 돌이 나는데 그 날카롭기가 쇠라도 뚫는다. 이 돌을 캐내주려면 반드시 먼저 신에게 기도를 드린 뒤에 캔다.

  주나라 무왕 때 그 싸리나무 화살과 돌활을 바쳐 주공에게 드려 성왕을 돕게 하고, 또 다시 사신을 보내서 들어와 하례하게 했었다. 그런 지 일천여 년이 되어 비록 진나라, 한나라가 융성했어도 사람을 보내 오지 않다가 문제가 정승이 된 위나라 경원 말년에 이르러 비로소 사람을 보내서 싸리나무 화살과 돌활, 초피 등속을 바쳐 왔다. 이 때 위나라 임금은 조서를 내려 상부에 보내고 그 왕에게 비단과 담요 등속을 하사했다.

  그들은 무제 원강 초년에 다시 와서 물건을 바쳤고, 원제가 중흥하자 또 강좌로 나와서 그 돌활을 바쳤다. 성제 때에 석계룡에게 와서 공물을 바치고자 하므로 까닭을 물으니 그들은 대답하기를, [시절마다 소와 말이 서남쪽을 바라보고 조은지 삼년이 되었다. 그래서 큰 나라가 있는 줄 알고 온 것이다] 했다.(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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