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물길국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으니 옛날의 숙신국이다. 부락마다 다 각각 어른이 따로 있고 서로 통일되지 않았다. 그 나라 사람들은 몹시 꿋꿋하고 사나와서 동이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강성하다. 또 말이 독특하게 다르고, 항상 두막루 등의 나라들을 우습게 여기니 모든 나라들이 역시 근심스럽게 생각했다. 이 곳은 중국 낙양과의 거리가 오천 리나 되고, 화룡, 북쪽으로 이백여 리를 가면 선옥산이 있다. 산으로 해서 북쪽으로 십삼일을 가면 기려산에 이르고, 또 북쪽으로 칠일동안을 가면 태로수에 이르고, 또 동북쪽으로 십팔일 동안을 가야 그 나라에 이른다. 그 나라에는 큰 물이 있어 넓이가 삼리가 넘는데, 그 물을 속말수라고 한다. 땅이 몹시 습하기 때문에 성을 쌓고 그 안에서 굴을 파고 산다. 이 굴의 모양은 집이 마치 무덤과 같은데 위에다가 문을 뚫어놓고 사다리를 타고 출입한다. 그 나라에는 소는 없고 수레와 말은 있다. 농사 짓는 데는 사람이 밭을 갈고 수레는 사람이 밀고 다닌다. 조와 보리를 양식으로 먹고 채소는 아옥이 있다. 응염이라는 것을 나무 위에서 따다가 먹고 또한 염지도 있다. 돼지는 많고 양은 없다. 쌀로 빚어 술을 만들어 마시는데 이것을 마실 때는 취하도록 마신다. 여자들은 포목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남자들은 돼지나 개가죽으로 갖옷을 만들어 입는다. 혼인을 지내는 첫날 밤에는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가서 여자의 젖을 만지는 것으로 정혼하는 절차를 삼아 이내 부부가 된다. 그들의 풍속은 사람의 오줌으로 얼굴과 손을 씻고, 머리에는 범이나 표범의 꼬리를 꽂는다. 그들은 활 쏘고 사냥하기를 잘한다. 활의 길이는 석 자나 되고, 화살의 길이는 한 자 두 치나 되는데 화살 촉은 돌로 만든다. 그들은 만일 부모가 봄이나 여름에 죽었을 때는 선 채로 묻은 다음 무덤 위에 집을 지어서 비가 새지 않도록 한다. 또 만일 가을이나 겨울에 죽었을 때는 그 시체를 가지고 담비를 잡으면 담비들이 그 시체의 고기를 먹다가 많이 잡힌다. 그들은 항상 칠, 팔월이면 독약을 만들어 이것을 화살촉에 발라 새나 짐승들을 쏘아 잡는데, 이 화살에 맞기만 하면 모두 죽는다. 이렇게 만든 독약은 역시 사람도 죽인다. 그 나라에는 도태산이라는 산이 있다. 이것을 위나라에서는 태백이라고 한다. 이 산에는 범과 표범, 곰, 이리 등속이 있어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에 올라 오줌이나 똥을 누지 못한다. 산길을 갈 때는 모두 물건으로 몸뚱이를 가리고 간다. 연흥년중에 그들은 사신 을력지를 보내서 조공을 바쳤고, 태화 초년에 또 말 오백 필을 바쳤다. 을력지의 말을 들으면, 처음에 그가 자기 나라를 떠나서 배를 타고 난하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 태니하에 이르자 배가 물 속에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남쪽으로 육지에 올라와 다시 낙고수를 건너 굴안 서쪽 국경으로 해서 화룡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그 나라가 먼저 고구려의 열 부락을 깨친 다음, 백제와 함께 비밀히 계교를 세워 물길로 해서 힘을 다하여 고구려를 취하자고 했다. 이에 을력지를 사신으로 중국에 보내서 그 일의 가부를 물었더니 중국에서는 이들에게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이들 세 나라는 모두 같은 번방이니 마땅히 함께 화평하게 지낼 것이요, 서로 침략하지 말라] 했다. 이에 을력지가 북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는 오던 길로 쫓아서 배를 얻어 타고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는 것이다. 구년에 다시 사신 후니지를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 그 이듬해에 다시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 그 나라 곁에는 대막로국, 복종국, 막다회국, 고루국, 소화국, 구불복국, 필려이국, 발대하국, 육우릉국, 고복진국, 노루국, 우진후국 등의 나라들이 있어서 모두 전후해서 각각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 태화 십이년에 물길국은 다시 사신을 보내서 싸리나무 화살과 방물들을 바쳐 왔다. 십칠년에 또 사신 인파비 등 오백여 명을 보내서 조공을 바쳤다. 경명 사년에 다시 사신 사력귀 등을 보내서 조공을 바치고, 이로부터 정광년간에 이르기까지 사신이 서로 왕래했으나 그 뒤로는 중국이 모두 시끄러워져서 간혹 오지않는 때도 있었다. 흥화 이년 유월에 사신 석구운 등을 보내서 방물을 바치고 이로부터 무정 때에 이르기까지 끊어지지 않았다.(魏書) |
이 글에 대한 참조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운영자 허락없이 불펌할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원저작자 로고>가 펌글에 자동 삽입됩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퀴즈풀이 > 역사 사료와 데이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주서 이역전 고려 (1) | 2007.03.08 |
---|---|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거란전(글안국) (1) | 2007.03.08 |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위서 동이전 백제 (1) | 2007.03.08 |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2) | 2007.03.08 |
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양서 제이전 왜국 전 (1) | 2007.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