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봉건왕정의 발전
이번 포스트에서는 중세 유럽 각국사의 발전을 포스팅하기 위한 배경 지식으로서 중세 봉건 왕정이 성립된 배경을 간략히 다루어 봅니다. 아주 짧게 포스팅 하고, 각 국가별로 여러 파트로 나누어서 유럽 중세 각국사를 다뤄보겠습니다. 이 포스팅과 관련된 중세 각국의 역사에 관련된 글들은 http://historia.tistory.com/category/서양사이야기/중세각국사 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1. 중세 봉건 왕조는 왜 절대주의 국가가 아닌가? 중세 봉건 왕조는 프랑크 왕국의 분열 이후, 각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국가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권력 유지를 하기 위한 국가이고, 국민의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봉건적 왕조라는 말은 일단, 봉건제도를 매개로 한 국가라는 뜻입니다. 이 당시 국가는 프랑크 왕국의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공권이 해체된 상황에서 유력 제후들과 연합한 국가형태를 띄고 있었으며, 그 연합은 사적인 보호관계인 주종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쌍무적 계약관계>였습니다. 따라서 11-14세기의 국가들의 특징은 주권이라던가 중앙집권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또, 국왕이 제후들을 압도하기 위하여 될 수 있는 한 왕령을 넓히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로 삼았으므로, <국토>라는 개념이 없고 <왕령>이라는 개념만 존재합니다. 이 <왕령>에 속한 자들은 모두 국왕의 조세원이지만, 중세 위계상 장원의 노역 담당자로서 <국민>이라는 개념도 없습니다. 당시 장원의 농노들은 누가 주인이 되었든 편안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왕령도 제후국을 능가하지 못하였으므로, 중세의 왕조들은 봉건질서상 상위 주군의 역할을 담당할 뿐, 실제 강력한 왕권을 구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프랑크 왕국과 로마를 계승하였다는 이념을 가진 신성로마제국은 자국의 봉건국가들조차 제압하지 못하였고, 프랑스의 카페 왕조는 제후 연합 세력의 수장으로서 아무런 힘도 없는 왕조였습니다. 단지, 영국만이 강력한 왕권을 확대하려고 했지만, 이것도 대헌장이라는 봉건귀족들의 요구사항에 막혀 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봉건국가들이 중앙집권을 이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단 봉건제후들을 누르고 <지방분권을 타파>해야 합니다. 또 보편적 중세교회의 수장인 교황권도 타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왕령을 넓혀 영토를 확장하고 그 영토민에에게 <국민>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왕권을 뒷받침할 조세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진 것은 15세기 이후입니다. 봉건제후의 세력을 누르는 것은 십자군, 백년전쟁, 장미전쟁, 각종 왕위계승 전쟁을 통하여 이루었고, 교황권은 십자군전쟁, 종교개혁 등을 통하여 눌렀습니다. 왕령의 확장은 각국의 16-18세기 왕위계승전쟁, 종교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신항로 개척으로 유럽 각국 왕권이 금전적으로 뒷받침 받게 됩니다. 2. 그러나 12-14세기 봉건 국가들도 근대 국가적 성격은 있었다. 12세기 이후 유럽의 국가들도 근대적인 성격은 일부 갖추었습니다. 일단 12세기 도시와 상업의 성장으로, 유럽의 각국은 어느 정도 조세원을 확보하였습니다. 특히 도시에서 시민계급이 성장함으로서 중세 장원과 다른 또 다른 세력이 출연한 것이 중요합니다. 즉, 봉건제도와는 다른 세력이 출연함으로서 근대 시민적 성격이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왕들은 이 시민계급의 성장 및 대학의 발전과 더불어 체계적인 행정제도를 정비합니다. 이 행정제도 정비에는 각국의 주권이라는 개념이 포함된 <로마법>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 로마법은 고대 로마 이래 <국민국가>라는 개념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는 법 개념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럽의 각국은 이 로마법의 원리에 따라 국왕의 중앙집권 개념을 체계화하고 왕령을 확대해 갑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가 이런 개념에 충실하였고, 이들 두 나라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게 됩니다. 프랑스 왕조의 인척관계였던 에스파냐 등도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여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아직 이런 로마법의 개념이 정립되지 못하였습니다. 대충 이야기하고 중세 유럽 각국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각국사로 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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