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의 난
이자겸이 다른 성씨가 비(妃)가 되어 권력과 총애가 나뉘어질까 두려워하여 셋째 딸을 왕비로 바쳤으며, 넷째 딸도 왕에게 바쳤다. 왕은 이자겸을 제거하고자 신하들을 불러 논의하였으나, 이자겸의 심복이었던 척준경이 화가 나서 칼을 빼어 들고 군사들로 하여금 활을 쏘면서 공격을 하니 화살이 왕 앞에까지 날라 왔다. 밤에 왕이 산호정까지 도망을 하였는데 따라오는 자들은 10여인에 불과하였다. 왕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글을 지어 자겸에게 선위(禪位)할 것을 청하였다. 고려사, 이자겸 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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