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김생전 사료
김 생은 부모가 미천하여 가문의 내력을 알 수 없다. 경운 2년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다. 그는 평생동안 다른 기예는 닦지 않았으며 나이 8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예서와 행서 초서가 모두 입신의 경지여서 지금까지도 더러 그의 진필이 남아 있는데 학자들이 보배로 여겨 전하고 있다. 숭녕 연간에 학사 홍 관이 진봉사를 따라 송에 들어가서 변경에 묵고 있었는데, 이 때 한림 대조 양 구, 이 혁 등이 황제의 칙서를 받들고 사관에 와서 그림 족자에 글씨를 썼다. 홍 관이 그들에게 김 생이 쓴 행초 한 권을 보이니 두 사람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오늘날 왕 우군의 친필을 보게 될 줄 몰랐다"고 하였다. 홍 관이 말하기를 "아니오. 이것은 신라인 김 생이 쓴 것이오" 하니 두 사람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천하에 왕 우군말고 어찌 이런 묘필이 있겠오?"라고 하였다. 홍 관이 여러 번 말하였지만 그들이 끝내 믿지 않았다. 또한 요 극일이라는 사람이, 벼슬이 시중 겸 시서 학사에 이르렀는데 필력이 좋아 구양 순의 솔경의 필법을 터득하였다. 비록 김 생에게는 못 미쳤지만 역시 특이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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