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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규 철(경성대 교수) | ||||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네 나라 사람들은 근대적 발해사 연구가 시작되어서부터 지금까지 총 1,972편의 글이 발표하였다. 물론 1,972편 중에는 부분적으로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것까지를 포함하여 숫자상의 의미는 크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발해사 연구와 관련되어 이만한 글들이 발표될 수 있었다는 것은 발해사 연구가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4국이 공동의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다. 4개국의 연구를 계량적으로 분석해 보면 中國이 894편 45.3%로 다른 나라에 비해 가 장 많았고, 日本이 435편 22.1%, 韓國이 380편 19.3%, 러시아가 263편 13.3%였다. 또한, 그동안 글을 남긴 사람들을 중심으로 볼 때에, 中國은 269명, 日本이 193명, 韓國이 170 명, 러시아가 78명으로 전체 633명의 학자나 기관들이 글을 발표하였다. 이 통계로 보자 면, 러시아가 가장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업적을 남긴 셈이다. 1인당 평균 3.37편의 글이 나왔다는 것이다. 분야별 연구 현황을 보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발해국의 현장에서 현대사 가 전개되는 이유로 인하여 고고학 관련 발표문들이 많았고, 현장이 없는 한국은 문헌사 적인 면에서, 연구사나 외교관계, 유민관계 및 종족과 사회관련 발표가 다른 나라에 비 해 상대적으로 많았다. 4개국 전체를 집계한 결과, 전체 1,972편 중 考古一般, 遺蹟, 紀行 관련 논저를 비롯해서(320편 16.2%), 都城·建築·寺院·聚落址(188편 9.5%), 古墳·古墓 (85편 4.3%) 관련 글까지를 포함하면 593편 30%가 고고학 관련 글들이라는 점이다. 이 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발해사 연구가 기록의 부재로 인하여 고고.발굴에 기대하는 바 가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장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언어, 문자에 관 한 것으로 6편 0.3%이며, 다음이 사상, 종교 등으로 15편 0.7%, 인물, 교육 등은 17편 0.9%에 그쳤다. 중국보다 오히려 활발한 연구가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모두 1909년의 간도협약과 1860년의 북경조약으로 인하여 만주지역과 연해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현 상이었다고 여겨진다. 그 이후에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연구자의 국적은 중국이다. 문 화대혁명이 지나고 난 이후의 현상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한국에서 80년대 이후 급 격하게 발해사 연구를 많이 하였던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개방과 함께, 한국 경제의 발 전으로 인한 학문 저변의 확대 등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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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中國·日本·러시아의 渤海史 硏究 推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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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발해사 연구에 대한 현황 자료입니다.
원문 사이트 : http://www.koguryo.org(사단법인 고구려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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