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나라의 풍속이 대국(大國)에 알려진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고 은(殷) 나라 태사(太師 기자(箕子))가 문교(文敎)를 일으키기 시작한 지도 천여 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유림(儒林)과 문원(文苑)을 조금도 볼 수 없었던 것은 어찌된 연고인가. 신라(新羅) 이후로 중국에 유학하는 인사들이 점점 많아졌지만 오직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세상에 이름을 날렸고, 고려(高麗) 때에는 느지막하게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나왔는데 그의 깊고 넓은 학식은 능히 겨룰 자가 없었다. 이렇게 본다면 글로 기예를 떨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다가 아조(我朝)에 들어와서는 문운(文運)이 옛날에 비해 훨씬 융성해지고 문장에 종사하는 인사들이 손가락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왔지만 그 사이에 성대하게 대가(大家)를 이루고 옛날의 법도를 따르는 자들은 역시 찾아보기가 자못 힘들었다. 선릉(宣陵 성종(成宗))의 시대에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가 홀로 거닐었고 목릉(穆陵 선조(宣祖)) 때에는 간이(簡易 최립(崔?))가 높은 경지에 올랐으며 유림의 기대를 한 몸에 진 현헌(玄軒 신흠(申欽))과 문원(文苑)의 명성을 독차지했던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가 조용히 관각(館閣)에 거하면서 지어낸 작품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이때에 계곡 장공이 또 늦게 세상에 나와 문단에 참여했는데 역시 능히 대적할 자가 있지 않았다. 내가 일찍이 계곡을 목은과 비교해서 논해 본 적이 있는데, 그 규모는 목은만 못하지만 정치(精緻)함은 능가했고 문채(文采)는 약간 뒤떨어지지만 이치를 밝히는 면에서는 더 치밀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세상과 함께 오르내리는 기운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것으로서 지금 이후로도 다른 현상들을 이에 유추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의 문장은 정말 훌륭하다고 할 만하다. 크면서도 자만하지 않음을 경지에 이른 사람은 믿게 될 텐데 내 말이 징험되는 것을 알아줄 사람이 뒤에 분명히 나올 것이다. 아, 공은 나이가 나보다 16년 아래이지만 예술에 대해서 담론할 때면 문득 스승의 자리를 비워 두고 배우는 자세가 되곤 하였다. 그리고 다시 귤옹설(橘翁說)을 지어 그에게 주었는데 이는 대체로 나이가 적어도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을 취한 것이었다. 나는 작품 한 편이 이루어질 때마다 공에게 가서 교정을 받지 못하면 감히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삼도부(三都賦)처럼 현안 선생(玄晏先生)을 기다려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될까 하고 기대했었는데, 오늘날 공이 먼저 가고 내가 뒤에 남을 줄을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공의 저술은 병화(兵火)를 입지 않아 산일(散?)된 것이 없으니 세상에 보기 드문 보물은 귀신이 보호해 주고 바탕이 아름다운 금과 옥은 불로 재앙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닌가. 공의 윤자(胤子) 장선징(張善?)이 편지를 보내 청하기를 ‘선인(先人)의 문집을 이제 바야흐로 판각(版刻)하려 하는데 어른께서 한마디 말씀을 하여 이 일을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였다. 내가 비록 늙어서 정신이 흐리다고 하더라도 어찌 차마 거절하겠는가. 마침내 평소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생각을 써서 서(敍)로 삼는다. 옛날 양(梁) 나라 소명태자(昭明太子)가 말하기를 “도 징사(陶徵士 도잠(陶潛))의 백옥(白玉) 같은 작품에 조그만 흠이 있는 것은 그저 한정(閒情 풍류스럽고 고아(高雅)함)한 마음에서 나온 1부(賦)일 뿐이다.” 하였는데, 그 말이 음미할 만하다. 그런데 오늘날 공을 책망하는 사람은 어찌하여 그렇게도 심하게 한단 말인가. 내가 이에 대해서는 분개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임오년(1642 인조 20) 5월 하순에 서간 노인(西磵老人) 김상헌(金尙憲)은 서(敍)한다. - 계곡선생집 서, 김상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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