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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대원군의 호포제와 사창제 실시 사료

 

호포제와 사창제

갑자년 초에 대원군은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그 전의 형태를 바꾸어 모든 양반, 천민에게 1정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세납전 2량씩 고루 바치게 하였으니 이를 동포전이라고 한다.

- 매천야록, 갑오이전 -

사창절목

본 창에는 관장할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니 반드시 본면 중 부지런한 자를 택하고 일면회에서 천거하여 관에 보고한 뒤에 뽑니다. 또한 관에서 감히 강제로 정하지 말고 그를 일러 사수라고 하고 환곡을 분급, 수납하는 것을 맡아 검사한다. 또한 각 동에서 근검한 사람을 가려 뽑아 당장으로 삼아 일청 사수가 지휘하고 본동이 받고 내주어 그로 하여금 바로잡게 하며 창고지기 1명도 사수로 하여금 지역에 뿌리박은 자를 잘 선택하여 그로 하여금 맡아서 지키고, 출납하고, 용량을 재서 일체 환곡을 분급받은 백성에게 부칠 일이다.

환곡을 분급하는 규칙은 해당 면에서 각 동 대소 빈부로써 차등으로 삼으며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동네에 분급된 양을 헤아려 지나치게 맣거나 지나치게 적을 우려를 없게 하며, 만약 유망하여 받아내지 못한 곳이 있으면 해당 동에서 골고루 배분하여 채워낼 것이로되 사수와 해당 동장은 모두 경계하고 삼가지 못한 죄로써 심문할 일이다.

- 일성록, 고종 4년 6월 11일 -

참고글 : 대원군이 삼정의 문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신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전정을 개혁하기 위해 은결을 색출하고 수령들에게 그 직분을 나누어 주었으며,

군정을 개혁하는 것은 호포법으로 양반에게도 포를 받았는데, 단 양반들의 체면을 위해 양반들은 하인이름으로 2냥을 납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환곡을 개혁하기 위한 것은 사창제의 실시인데, 이것은 관에서 운영하던 환곡을 지방자치조직인 사에서 운영함으로서 관리의 부정을 금지하고 재정과 민생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창은 조선 전기부터 있던 것을 고종대 승인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의창은 관설기구였지만, 사창은 관설은 아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