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 인물 기록
갑신정변의 여러 적들(김옥균 등)은 서양을 존중하고 요순과 공맹을 비판하면서 유교를 야만이라고 하고, 도를 바꾸려 하면서 매번 개화라 일컬었다. - 속음청사, 상 - 김옥균은 청군의 종주권 아래에 놓여 있는 굴욕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치욕에서 벗어나 조선이 세계 각국 가운데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일원이 될 것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 하였다. 김옥균은 그대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니, 시대 추이를 통찰하고 조선도 강력한 현대 국가가 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바랬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술 채용에 따라 정부와 일반 사회의 구투인습을 일변시킬 필요를 확신하였다. 그(김옥균)는 구미 문명이 하루저녁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열국이 서로 경쟁을 벌여 점진적으로 이룩해낸 것으로서 수세기나 필요했으나, 일본은 일대만에 속성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일본을 본보기 삼고자 백방 분주하였다. - 서재필, 회고 갑신정변 - 한국이 생존하기에 적합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한국이 적자로서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한국이 공정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한국이 적자로서 생존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 윤치호일기, 1982년 4월 7일 - 1884년 중엽에 새로운 집단이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간 몇몇 젊은이들은 철저한 개혁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일본이 변모하는 과정을 본 이들은 일본처럼, 아니 일본보다 더 철저히 개혁을 바랐다. 가능하다면 필봉 한자루로 조국을 서구화하고 싶어하였다. 또 일본 관료의 품에 몸을 던져 혁명적 변혁을 위한 만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 F. A. 맥켄지, 대한제국의 비극 - |
참고글 :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에 대한 내용과 인물평가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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