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윌터 롤리에 대한 이야기
1. 가장 활기찬 시대에 태어난 꽃미남 풍운아 영국 역사에서 윌터 롤리는 많은 드라마와 이야기 소재로 널리 애용됩니다. 잘생긴 외모와 재치, 끝없는 여행의 모험담, 그리고 비극적인 최후까지.... 한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를 그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윌터롤리는 요즘으로 말하면 소위 <재벌가,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영국 동부의 유력가문에 태어났는데, 머리까지 비상하여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한 수재였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은 아니였나봅니다. 그는 혈기 왕성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였습니다. 그는 17세 때 프랑스에서 핍박받는 신교도를 구원하겠다면서 카톨릭과 신교의 종교전쟁이 한 장인 전장에 뛰어들기도 하였습니다. 또, 아일랜드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나서서 반란군을 진압함으로서 군인 영웅으로서의 면모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시대는 영국의 최전성기로 영국 르네상스 시대이자, 절대주의 시대였고, 또 식민지 개척의 시대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윌터 롤리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환심을 산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어느날,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나가던 길에 진흙구덩이가 있었습니다. 윌터 롤리는 그것을 보고는 자신의 우아함과 기품을 버리고 자신의 망토를 진흙위에 펼쳐서 여왕이 우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처신하였습니다. 여왕은 이 때부터 더욱 윌터 롤리를 신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영국의 위대함을 세계에 과시한 철의 여인이었고, 윌터 롤리는 당시 여왕의 궁정 신하로서 가장 지적이고 멋진 남성이었습니다. 윌터 롤리의 장점은 잘생긴 외모 외에도, 시원시원하고 모험가적인 기풍이 있었고, 군인으로서도 뛰어났다는 점도 있었고, 또한 문필가로서 문장력이 무척 뛰어났다는 것에도 있었습니다. 2. 미국의 버니지아 주를 발견하다. 윌터 롤리는 모험심이 무척 강하여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그의 모험 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버지니아>에 상륙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그는 이복형인 길버트를 따라 북아메리카로 탐험을 가서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지금 미국의 노스케롤라이나 해안에 도착한 그는 이 새로운 땅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는 <이 땅을 발견한 것은 모두 처녀이신 여왕님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새로운 식민지를 <버지니아 : 처녀라는 뜻>라고 불렀습니다. 여왕은 윌터 롤리에게 또 다시 감동받았고, 그가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여왕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3. 동인도 회사의 정책을 수립하고, 무적 함대를 격파하다. 윌터 롤리의 문관으로서의 위대함은 동인도 회사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에 대한 마인드 맵을 제시하여 이후 영국이 세계 곳곳을 지배하는 데 필요한 전략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또, 그의 무관으로서의 위대함은 당시 유럽을 제패하면서 아메리카 무역을 독점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는 아메리카 무역항로를 독점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여왕은 <짐은 국가와 결혼하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그리고 스페인의 이권을 영국이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스페인의 자칭 세계 최강이라던 무적함대는 상선에 고깃배, 뗏목까지 모아 이루어진 영국 함대에게 격파되었고, 이후 유럽의 무역로는 네덜란드, 영국으로 넘어갑니다. 또 롤리는 기니아를 탐험하였을 때, 엄청난 금은 보화가 묻혀있다는 것을 여왕에 보고함으로서 영국 국고를 튼튼하게 채우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기에는 여왕의 검소함과 해외에서 들어오는 금은으로 국가 재정이 탄탄하였습니다. 4. <세계사>를 집필하다. 윌터 롤리는 세계사에 이름을 올린 여행가이자, 군인, 문필가였던 풍운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너무나 비참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은 뒤, 영국은 스튜어트 가문의 제임스 왕에게 왕계가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왕은 호탕하고 능력있는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윌터 롤리는 왕에게 반역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12년간이나 런던탑에 갖혀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옥생활 동안 그는 유명한 저서인 <세계사>를 저술했습니다. 세계사 저술에도 일화가 있습니다. 윌터롤리는 세계사 1권을 쓰고, 2권을 적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런던탑 감옥 밖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길래 그는 그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다음 날, 마침 사건 관계자와 만난 그는 자신이 본 싸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사건 관계자는 윌터 롤리가 목격한 것과 상당히 다르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롤리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상대방 역시 자신이 사건의 관계자라면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였죠. 윌터 롤리는 생각했습니다. 어제 일어난 사건도 정확하지 못하여 이렇게 답답한데, 수백년 전의 역사를 쓴다는 것이 어떻게 정확할 수 있겠는가? 롤리는 자신이 쓰던 세계사 2권을 난로속에 던져 버리고는 다시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계사는 1권만 나오게 되었다는 일화입니다. 역사라는 것이 당대의 자료라 하더라도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근거인가라는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5. <엘 도라도>를 찾아 떠나다. 12년간의 감옥생활에서 간신히 풀려난 롤리는 왕의 명령으로 <엘 도라도>를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엘 도라도는 유럽인들이 상상 속으로 그리던 황금의 도시를 말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수많은 여행과 보물의 발견을 해왔던 롤리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롤리는 남아메리카로 출발하여 황금의 도시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황금의 도시는 전설 속의 이야기였죠. 아무리 롤리라고 해도 없는 것을 찾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롤리가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였고, 왕에게 불충한 행동을 보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결국 왕은 롤리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롤리는 성격이 호탕하고 풍운아였지만, 왕에게 불충하지는 않았다면서 올드 파레스 형장에 끌려갈 때까지 계속 무죄를 주장하고, 선처를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형이 집행되려고 하자, 그는 그의 일생 속에서 보여주었던 풍운아의 기질을 보여줍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사형 집행인의 도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극약이지만, 약효는 확실하겠구나> 라고 말하곤 도끼를 받아 죽게 됩니다. 윌터 롤리는 절대주의 시대이자, 종교개혁의 시대이자, 대항해 시대를 살면서 그 시대의 특징들을 몸으로 겪은 인물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널리 애용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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