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말 그대로 ‘총체적’이라는 단어였다. 총체적이라 함은, 흑사병에 대해 두루 다루는 것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펴본다면, 그러한 광고문구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출판사의 (어찌 보면) 선정적일수도 있는 광고 문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도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흑사병에 대해서 전문적이지도 못하고(저자가 전문 사학자가 아니다.), 또한 영국 중심의 편협적인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원래 영국의 흑사병에 대해서만 다루려고 하였으나,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대해서도 몇 장을 할애하여 서술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영국 이외에 그가 서술한 부분은 영국만큼이나 성의가 있거나 깊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비교적 먼저 소개된 흑사병에 대한 개설서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서양사 교수님이 서평 과제로 채택하셨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이 이 책을 소개하시면서 하는 말씀이 이 책이 비교적 먼저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흑사병에 대한 개설서라는 것이었다. 저자 역시 여러 사람의 논문을 종합하여 이 책을 엮어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개설서라고 하기엔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흑사병이 어떻게 유럽으로 전래되었는가,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걸쳐 유럽을 휩쓸었는가에 대해 책의 대다수를 할애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몇 명이 죽었다든가, 하지만 그 수치는 다소 부풀려져있다는 둥, 어처구니가 없다는 둥 하면서 자신의 추측성 수치를 난무하고 있다. 더욱이 흑사병이 유럽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그는 고작 ‘으레 있어야할 일을 촉진시켰을 뿐’으로 그 역할을 규정하고 있었다. 흑사병이 유럽에 끼친 영향에 대해 고작 두어장 정도를 할애했을 뿐이다. 오늘날 많은 개설서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역사에서 큰 비중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에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고, 배울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립 지글러의『흑사병』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어떠한가? 오로지 수치와 몇몇 살벌한 풍경을 통해 흑사병을 묘사하였을 뿐이었다. 유럽 인구의 대다수가 죽어나간 흑사병이 유럽에 끼친 영향은 고작 입을 줄이는 정도였는가에 대해선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한길사, 한길히스토리아?
한길사는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해 출판함으로써 히트를 쳤다고 알고 있다.『로마인 이야기』의 인기는 엄청나서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사랑받으며 읽히고 있다. 그러한 여파를 타서였는지 한길사는 한길히스토리아로 그 이름을 바꾸었고 역사에 대한 책들을 출판해내는 유명한 출판사로 자리를 굳혔다.
그렇다면 필립 지글러의 『흑사병』은 어떠한가? 난 처음에 번역된 필체가 적응이 되지 않아서였는지 읽히지 않았다. 물론 나의 역사적인 지식이 짧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수업을 수강하던 많은 학생들과 교수님은 이 책의 해석에 대한 문제에 대해 매번 지적해왔다. 책의 문장이 매끄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역량 낮아 도대체 문장이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책을 번역할 때 번역자의 역할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번역자가 배경지식이 많은 만큼, 번역의 완성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르쥬 뒤비의 『세 위계』와 마틴 버널의 『블랙 아테나』가 번역된 것을 보라! 두 책 모두 어려운 책이지만, 역자들의 폭넓은 지식과 깔끔한 해석에 놀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어줍지않은 번역은 지글러의 『흑사병』의 격을 다시 한번 격을 깎아내리는 역할 밖에 하지 못했다. 학문에서 번역은 그 나라 학문의 수준을 높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길사의 자부가 얼마나 대단했기에 한길히스토리아로 개명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길사에 앞으로는 많은 역사책을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단 오히려 양질의 책을 양질의 번역을 통해 완성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당부하고 싶다.
오히려 이 책을 사는 것보단 ‘전염병의 역사가’라는 별명을 가진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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