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명의 성립
크게 문명의 성립 조건으로는 계급의 출현, 청동기의 제작, 문자의 사용을 꼽는다. 중, 고등학교에서 다루는 세계사에서는 세계의 4대 문명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을 다룬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큰 강에 위치해 있으며, 매번 하천이 범람할 때마다 치수(治水)를 위해 대규모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천 하류에 위치한 이러한 문명들은 하천 하류의 비옥함을 이용하여 농업생산을 하였기 때문에 생산력이 올라가고, 인구가 증가하였다. 또한, 하천을 이용한 교통으로 상업 활동과 문화를 교류하였다.
2) 4대 문명
① 중국
중국의 황하문명은 기원전 5000년 경 황하의 황토 지대를 중심으로 나타났다.신석기 시대에 나타난 문명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는 양샤오 문화라고 하여, 채도(彩陶, 색칠한 도기)를 사용하였으며, 주로 황하 중상류에서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후기는 황하강 하류에 위치하여 흑도(黑陶, 검은 도자기)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룽산 문화라 한다.
본격적으로 문명이 시작된 것은 은나라(殷, 혹은 상商)부터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16 ~ 11세기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래는 신화 속의 나라였다가, 은허가 발견되면서 역사로 편입되었다. 정치는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신정(神政)이었으며, 왕위가 부자 세습되고, 순장을 하는 것으로 보아,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는 여러 부족이 연맹한 계급사회였으며 또한 씨족 사회이기도 하였다. 청동기를 사용하였으며, 점을 친 이후에는 한자의 기원이 되는 갑골문을 남겼다. 은력(殷曆)이라는 태음력의 달력을 사용하였다.
은을 멸망시키고 등장한 주나라(周)는 기원전 11세기 ~ 8세기까지 이어졌다. 원래는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도 주나라 내에서의 분쟁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춘추시대 전의 주나라를 다루도록 하겠다. 먼저, 주가 은에 비교되는 점은 덕치주의(德治主義)와 천명사상(天命思想)의 정치적 철학이다. 은을 멸망시킨 주는 대의명분으로써 덕으로써 다시리는 덕치주의와 하늘이 내린 명분을 따른다는 천명사상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주의 가장 큰 정치적 특징은 봉건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줄 곧 서양의 계약적 봉건제도에 비교된다. 서양과 달리 주의 봉건제도는 혈연적 종법(宗法)에 의한 것으로, 황실의 종친에게 봉토를 하사하고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인데, 그 대가로 군역과 공납을 받았다. 이는 혈연으로 맺어진 왕과 제후가 반목을 일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왕과 제후의 혈연적 관계는 전보다 소홀해져,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비극을 낳았다. 사회는 장자 중심의 종법(위의 혈연적 ‘종법’할 때 그 종법이다.)이었고, 예법이 발달하였다. 정전제(井田制)라는 공(共 : 함께 쓰는)개념의 토지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논이나 밭을 우물 정井자와 같이 9개로 나눠 경작하는 것을 뜻한다. * 수정사항 : 덕치주의, 천명사상의 부연설명, 공개념의 정의 부연설명
② 인도 문명
처음 인도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에 드라비다 족에 의해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달하였다. 이는 하리파, 모헨조다로와 같은 계획도시나, 청동기, 채색도기, 상형문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드라비다 족은 계획도시 내에 도로와 하수도, 목욕탕 등의 거대 벽돌 건물을 건축하였으며, 가축(물소, 염소, 코끼리 등)을 키우고, 농경(밀, 보리 등)을 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가 기록된 점토판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무역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했던 인더스 문명도 기원전 1500년경에 인더스 강 유역을 점령한 중앙아시아 출신 아리아인에 의해 지배당하게 된다. 이들은 철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브라만교를 만들고, 계급제도인 카스트제도를 통해 드라비다족을 지배하였다. 자연신을 믿는 아리아인들은 그들의 기나긴 원정에서 겪었던 자연의 신비와 경의를 기록한 서사시『베다』가 브라만교의 경전으로 엮어졌다.
③ 메소포타미아 문명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니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인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이다. 개방적인 지형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무역이나 문화교류가 손쉬웠으나, 그만큼 왕조의 교체도 빈번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은 수메르 인이 도시국가를 건설하면서 시작하였으며, 뒤이어 기원전 2350년 경 아카드 인이 통일 왕국을 수립하였다가 다시 아무르 인이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국하고 기원전 1800년경 함무라비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함무라비왕은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다.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주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법전을 통해 계급분화에 따른 신분에 대한 법의 차별적 적용을 엿볼 수 있다. 후에 아시리아에게 멸망하여 통합되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는 개방적인 지형으로 인해 현세적인 종교가 발달하였다. 길가메시의 서사시에 나오는 ‘지금을 즐겨라’라는 말은 너무나도 유명한 것이다. 또한 지구라트라는 커다란 신전이 있어 신정(神政)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며, 점성술이 발달하였다.
그들은 잦은 교역으로 실용적인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쐐기 문자와 그를 기록한 점토판이나, 태음력, 60진법을 사용하였다.
④ 이집트 문명
앞서 언급한 메소포타미아와 달리 상당히 폐쇄적인 지형으로 빈번한 왕조 교체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줄곧 통일왕조가 들어섰다(고故 왕조 → 중中 왕조 → 신新 왕조). 이러한 자연환경은 종교관에도 영향을 주어 폐쇄적인 다신교가 성행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파라오, 피라미드, 사자의 서 등이 그것이다. ‘사자의 서’와 피라미드 안은 온통 상형문자로 장식되어있다. 혹은 이러한 상형문자를 파피루스에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한 미라를 만들기 위해 해부학이 발달하였다.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비옥한 토지가 유지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인은 이것을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의 측량술을 발전시켰고, 10진법, 태양력 등의 과학기술을 낳았다.
Tip. 위의 4대문명 중 유일하게 태양력을 쓰는 문명은 이집트였다. 정리해보면
태음력 : 은력(은나라), 메소포타미아 문명
태양력 : 이집트 문명
⑤ 고대 소아시아
서아시아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다룰 곳은 크게 세 군데이다.
먼저 히타이트는 오리엔트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국가이다. 철제 무기와 전차로 주변 지역을 정복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철기 제조법이 전파되었다.
페니키아는 해안에 위치한 도시국가로 주로 해상무역에 종사하였다. 이들을 통해 유럽과 서아시아, 이집트의 문물이 오가곤 하였다. ‘문명의 전달자’라는 칭호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카르타고와 같은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알파벳의 기원인 표음문자를 사용하였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위치했던 헤브라이는 다윗과 솔로몬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국교인 유대교는 훗날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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