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사료 모음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전역사
친애하는 60만 전우장병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내외 귀빈, 애국시민 여러분! 지난날 수십만 전우들의 선혈로써 겨레를 지켜온 조국의 전선, 초연은 사라지고 오늘은 초목에 싸인 채 원한의 넋이 잠든 산야, 이 전선에 본인은 군을 떠나는 마지막 고별의 인사를 드리려 찾아왔습니다. 여기 저 능선과 이 계곡에서 미쳐 피기도 전에 사라져간 전우들의 영전에 삼가 머리를 숙이고, 십여 년을 포환의 전지에서 조국방위를 위하여 젊은 청춘을 바쳤던 그날을 회상하면서 오늘 본인은 나의 무상한 반생을 함께 지녀온 이 군복을 벗을까 합니다. 우리의 숙원이며 이 나라 군인의 최상의 영예가 될 빼앗긴 강토를 다시 찾기 위한 통일의 전열에 서지 못한 채 군인의 길로서는 진정 불우한 중절을 맞는 오늘 본인의 심경은 무한한 감회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편 군문을 떠나면서 본인은 장구한 군인생활 과정에서 인류의 양심과 정의가 뜻하는 바에 짜라 자유 우방의 전우들과 함께 유엔의 깃발아래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반공전선에서 싸운 것을 내 생애의 가장 큰 자랑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본인은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한 촌가에 태어나, 군인이 된 후 겨레가 지어준 군복을 입으면서 그날부터 나의 신명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군인으로서 그 본분을 다하고 또 군인생활 속에서만 삶의 철리를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인은 군인으로서 그 초지를 다하지 못하고 더구나 혁명이라는 기구한 운명의 역경속에서 이제 군복을 벗어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본인은 오늘 이 마당에서 전시 평시를 막론하고 나의 군대생활을 통하여 가장 괴로웠던 시간, 지난 2년의 혁명을 회고하면서 나의 소회와 포부를 밝힐까 합니다.본인은 평소 한 용감한 무명의 병사가 적탄에 맞아 신음하면서 그의 충성과 청춘과 꿈을 안은 채 애처롭게 숨을 거두는 죽음에 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고 고귀한 것이며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보람있고 행복한 생을 향유할 권리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존의 권리는 그것이 국가라는 생활권 속에서 보장되기 위하여는 또 다른 생명의 성스러운 희생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군인의 길은 바로 여기에 귀일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과 '사'의 극한에서 감히 사를 초극하는 군인의 '죽음'은 정의와 진리를 위해 소아를 초개같이 버리는 희생정신의 극치로서 군인만이 가지는 영광되고 신성한 길인 것입니다.이 거룩한 '죽음' 위에 존립할 수 있는 국가란, 오직 정의와 진리속에 인간의 제권리가 보장될 때에만 가치로서 긍정되는 것입니다. 군인이란 이와 같은 가치를 구현하기에 요구되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그 존재의 의의가 있는 것이며, 결코 자기목적적인 것이거나 권력화될 수 없음은 재언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정통적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의 혁명이 그 얼마나 불행한 것이며, 또 그 혁명의 악순환이 종국적으로 국가의 쇠망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은 본인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가치구현이라는 문제 이전으로 돌아가 그 자체가 파멸에 직면했을 경우를 상도할 때, 거기에 혁명의 불가피성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5,16 군사혁명의 불가성은 바로 우리가 직면했던 혁명 직전의 국가 위기에서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날, 국정은 문란을 거듭하였고 우리가 부르짖던 자유민주주의는 한낱 장식에만 그쳤고, 도의의 타락과 사회의 혼란은 극심한 위에 부정, 부패, 독재는 민주주의 형해나마 그 존립을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청년학도들에 의해 민족정기를 평정하려던 4,19의 숭고한 뜻과 국민의 기대는 무참하게 배신되고 공산 간접 침략 앞에 국군은 존망의 위기에 함입되었던 것입니다. 사멸에 가까운 생명이 희생되기 위하여 가혹한 수술이 불가피하였기에 내 평생과 이 민족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못할 1961년 5월 16일 비분과 눈물을 머금고 겨레가 피로에 지친 새벽의 수도에 혁명의 총부리를 돌려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5,16이었던 것이며 오늘 본인이 군복을 벗어야 할 연유는 또한 여기에 깃들였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전우여러분! 다행히 우리는 하느님의 가호아래 혁명의 초기적 목적을 달성하고 조국은 이제 치유의 과정에서 건설의 과정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이제 국민 앞에 공약한 바 군정의 실질적인 종식과 진정한 자유민주적 헌정의 탄생이란 역사적 전환점에 서고 있으며, 5월의 구국혁명은 바야흐로 범국민혁명으로 대열을 전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5월 혁명은 단순한 변혁도, 외형적 질서정비도, 새로운 계층 형성도 아닙니다. 상극과 파쟁, 낭비와 혼란, 무위와 부실의 유산을 조상과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들 불운의 세대가 이 오염된 민족사에 종지부를 찍고, 자주와 자립으로 번영된 내일의 조국을 건설하려는 것이 우리 혁명의 궁극적인 지표인 것입니다. 14개월간에 네 차례의 정권교체를 보아야 했던 우리 한민족의 번뇌와 진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양심의 순리를 묵수한 도의의 대가는 천시와 빈곤이고, 권모에 능한 불의의 응보가 치부와 영달이었던 그 사회, 썩은 관록과 허망한 권위주의, 진부한 파벌의식, 비굴한 사대근성, 이 모든 봉건잔재의 전근대적 제요소를 송두리째 분해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광장에서 민족적 주체세력을 형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4,19와 5,16이 제기한 민족적 과제요, 역사가 교시하는 필연의 진로입니다. 이와 같이 막중한 과업을 수행함에 당하여, 우리는 국민 각자가 자주적 주체의식을 함양하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립정신을 확립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적 자주와 경제적 자립을 성취하고야 말 우리의 목표를 향하여 범국민적인 혁명을 전개시켜야 할 것이며, 번영과 민주공화의 낙토를 기약하는 혁명과업은 국민 전체의 주체성과 자발적 정신자세로써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빈곤의 악순환 속에 시달려온 민족이 새로운 정치풍토를 조성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룩할 비약의 단계로 이행코자 하는 이 대업은 군사혁명 과정에만 주어진 과제가 아닐진대, 다음 민정에도 기필코 계승되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중대한 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적한 바, 두 차례의 혁명이 제시한 과제가 범국민적인 노력으로 성취되어 자주, 자립, 민주, 번영의 새 공화국을 건립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오유로 돌리고 다시 부패와 혼란과 빈곤의 구질서로 환원할 것인가의 귀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이 군사혁명을 여하히 국민혁명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의 국민역량과 판단에 달린 문제인 것입니다. 본인은 군사혁명을 일으킨 한 책임자로서 이 중대한 시기에 처하여, 일으킨 혁명의 결말을 맺어야 할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면서2년에 걸친 군사 혁명의 종지부를 찍고 혁명의 악순환이 없는 조국재건을 위하여 항구적 국민혁명의 대오, 제3공화국의 민정에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찬연히 우리 만족의 앞날에 새 역사를 창조할 제3공화국의 여명에 서서 4,19와 5,16의 이념을 계승하여 민족주체세력을 이룩할 것을 다짐하고, 민주공화의 기치아래, 새나라의 힘으로 뭉친 동지들과 영원히 이 땅에서 굴욕과 빈곤이 없는 번영된 조국건설을 위하여 군복을 벗고 나의 남은 반평생을 바칠까 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혼연히 생명을 바치겠다는 나의 사생관과 국가관은 군복을 입은 오늘이나 또 군복을 벗은 내일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장병 여러분! 우리 세대의 고귀한 희생으로 민족중흥의 혁명과업을 기어코 완수하고 내일의 영광된 조국을 건설할 이 국민혁명의 대열은 여러분들께 다시는 혁명이라는 고된 시련을 되풀이하지 않게 할 것을 확신해 마지않습니다. 끝으로 국군장병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이 있기를 빌며 이 나라를 돕기 위해 와 있는 우방 전우들의 무운을 빌어 마지 않습니다. 오늘 병영을 물러가는 이 군인을 키워주신 선배, 전우여러분, 그리고 군사혁명 2년 동안 '혁명하'라는 불편속에서도 참고 편달 협조해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리며 다음의 한 구절로써 전역의 인사로 대할까 합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운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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