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세 유럽
① 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 족은 원래 발트 해 연안 등의 북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기원 전후에 인구 증가와 식량 부족으로 점점 남하하면서 로마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3세기경부터 로마 사회에서 소작농이나 용병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4세기 후반에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게르만 역시 서로마 방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서로마는 멸망하고, 서로마가 있던 자리에 게르만이 세운 여러 왕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② 프랑크 왕국
프랑크 왕국 역시 게르만이 세운 많은 왕조 중에 하나였다. 프랑크 왕국은 예전 로마 문화의 중심지였던 갈리아 지방(지금의 프랑스 지역)에서 번창하였다. 클로비스는 메로빙거 왕조를 개창(481)하고, 가톨릭의 정통파인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하여 로마 주민들과의 별다른 마찰이 없었으며, 로마 교회의 지지 또한 획득하였다. 궁재로 말년 메로빙거 왕조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롤루스 마르텔은 투르, 푸아티에 전투(732)에서 이슬람 세력이었던 옴미아드 군대를 격퇴하여 크리스트교 세계의 수호자로서 인정되어 로마 교회의 지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카롤루스 마르텔의 후손인 피핀은 메로빙거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이 카롤링거 왕조를 개창하였으며, 이탈리아 북부 라벤나 지방을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이것은 훗날 교황령의 시초가 되었으며,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회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피핀의 뒤를 이은 카롤루스 대제(칼 대제, 샤를 마뉴)는 옛 서로마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여, 로마 교회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칭호와 함께 새로운 서로마 황제로 대관(800)의 영예를 받게 되었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서로마 제국의 부활이라고도 한다.(글쎄;) 카롤루스 대제는 정복뿐만 아니라 지방관을 파견하여 중앙집권을 도모하고, 궁정 학교를 설립해서 라틴어, 논리학 등의 교육에도 힘썼으며 수도원에 고전 필사를 장려하여 문예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이를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한다.
카롤루스 대제 사후에 프랑크 왕국은 베르됭(843), 메르센(870) 조약을 통해 동, 서, 중 프랑크로 나뉘게 되었다. 이들은 각각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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