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사료
1979. 8. 10 YH 근로자들의 호소문 (YH 무역 여성근로자 사건)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께 저희들의 애타는 마음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거리에 내쫓긴 저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배고픔과 무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다는 말입니까. 전에도 몇 부의 호소문이 나간 바와 같이 경영진의 경영부실로 인하여 많은 근로자들이 생존권마저 박탈당하게 되고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1969년에 왕십리에서 10여 명의 종업원들로 시작하여 1970년에는 4천여 명의 종업원들로 늘어 국가발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하여왔고 수출실적이 많아 석탑산업훈장까지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해온 대가가 지금에 와서는 먹을 것은 물론 잠자리마저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진다면 그 누가 마음놓고 열심히 일할 수 있겠습니까?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은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로서 일찍이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냉대한 사회에 뛰어들어 산업의 역군들로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배우지 못했다고 사회의 천대를 받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못 배운 저희들만 원망하며 저희 동생들이 나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조금의 월급이나마 용돈을 줄여가며 저축하면서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주고 또 부모님의 생계와 약값을 보태준다는 뿌듯한 기쁨으로 신념과 긍지를 가지고 일해왔습니다. 수출실적이 높으면 나라도 더욱 발전할 수 있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다는 국민학교 시절의 배운 것을 더듬으며 우리는 더욱 더 잘사는 나라를 기대하며 열심히 일해왔습니다만 뜻하지 않은 지난 3월 30일 폐업공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니만큼 끈질긴 투쟁에 폐업철회는 되었지마는 정상화는 되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 속에서도 회사를 살리고 저희들도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 정상화는 말도 비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죽음보다 더한 두 번째의 폐업공고가 붙은 것입니다. 오갈 데 없는 저희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서 살란 말입니까?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들 약값은 어떻게 해야 된단 말입니까. 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죽음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상화 아니면 죽음이다"라는 동지들의 피맺힌 구호를 생각합니다. 저는 일자리만 주시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더 바랄 것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각계각층에서 수고하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들을 살려주세요. 지금은 다른 기업들도 불황으로 인하여 문 닫는 회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그 이유와는 다른 전혀 불황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드리고 싶습니다. 회장인 장용호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1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외화 도피시킴으로써 일어난 문제를 어찌 불황이라고 하겠습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점점 심각하게 되어가고 문 닫는 회사들과 많은 실직자가 생기는 지금에 저희 3백 20명마저 직장을 잃고 거리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약하고 먹을 것 없는 저희들은 죽으란 말입니까. 어디 가서 살길을 찾으란 말입니까. 각계각층에 계시는 사회인사 여러분! 저희 근로자들이 신민당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회사, 노동청, 은행이 모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기에 오갈 데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덕한 기업주는 기숙사를 철폐하고 밥은 물론 전기, 수돗물마저 먹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6일 새벽 4시경 여자들만 잠자고 있는 기숙사 문을 부수고 우리 근로자를 끌어내려 했습니다. 이렇게 약자만이 당해야 하는 건가요. 저희들의 회사가 정상화되어 일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저희들이 바라는 이 나라의 산업역군으로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저희들의 근본문제 해결은 조흥은행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YH무역(주)의 모든 주식 및 공장을 압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결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서 죽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들의 이 호소가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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