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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초기의 왕권 강화

12월, 왕이 질산의 북쪽에서 사냥을 하면서 닷새가 되도록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대부인 협부가 간하되 '왕께서 새로 도읍을 옮기어 백성들이 아직 안심하지 못하고 사니 마땅히 나라 일에 마음을 부지런히 쓰실 때 입니다. 그런데 이는 생각지 아니하고 사냥에만 몰두하시니, 만일 잘못을 고쳐 스스로 새로운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정치가 문란해지고 백성들이 흩어져서 선왕의 업적이 땅에 떨어질까 염려됩니다.'고 하였다. 왕이 크게 노하여 협부의 벼슬을 빼앗고 관아의 장원을 관리하게 하였더니, 협부가 분하게 여겨 남쪽의 한(韓)으로 달아났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

3월 고위 관리인 구도, 일구, 분구 등 3인을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이 3인은 비류부의 장이었는데, 그 바탕이 탐욕스럽고 깨끗하지 못해 남의 처나 첩, 소나 말, 재물을 빼앗아 제멋대로 하고 혹 주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매질하여 때리기 때문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분하게 여겨 죽이고자 하였다. 왕이 이를 듣고 그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동명왕의 옛 신하이었으므로 차마 죽이지 못하고 내쫓는 데 그쳤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

왕이 날로 포악을 더하여 항상 사람을 깔고 앉으며 누울 때는 사람을 베개삼아 베었다. 만약 움직이든지 하면 죽이고 용서하지 아니하며, 신하로서 간하는 자가 있으면 활을 당겨 쏘아 죽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모본왕 -

9월, 증외대자 패자인 어비유와 평좌인 좌가려는 모두 왕비의 친척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들의 자식들도 그 세력을 믿고 교만하고 사치스러워 남의 자녀를 약탈하고 전택을 마구 빼앗으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분노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천왕 -

9월, 서리와 우박으로 곡물이 상하여 백성이 굶주렸다. 10월, 왕이 궁실을 증축하였는데 자못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니 백성이 주리고 또 피곤하므로 여러 신하들이 자주 간언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봉상왕 -

자료 참조 : 고구려 초기 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리왕 대에 이미 대부를 쫒아낼 정도로 왕권이 강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무신왕도 신하를 죽이려다가 참았다. 모본왕은 신하를 죽였다. 봉상왕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등등에서 당시 왕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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