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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봉상왕 대 창조리 이야기

창조리는 고구려 사람으로 봉상왕 대 국상인데, 이 때는 모용외가 강성하여 걱정거리였던 때였다. 왕이 군신들을 모아 말하기를, <오묭씨는 병사가 강하다. 누차 우리의 영토를 침범하고 있는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에 창조리가 대답하며 말하였다.

<북부 대형 고노자는 현명하고도 용감합니다. 대왕이 만약 적들을 능히 누르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고노자가 아니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습니다. 왕이 신성태수로 고노자를 임명하니, 모용외는 다시 오지 못하였다.

8월에 왕이 국내의 남녀 l5세 이상인 사람을 징발하여 궁실을 수리하니, 백성은 식량의 부족과 노역의 괴로움으로 인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창조리가 간하되 '자연재해가 잇따라 닥치고 흉년이 들어 백성이 살 곳을 잃어버려 장정들은 사방으로 떠돌고 늙은이, 어린아이는 구렁텅이에 빠질 지경입니다. 이때야말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근심하며 반성할 때인데도 대왕께서는 이를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을 토목공사에 몰아내어 괴롭게 하시니 백성의 부모된 뜻에 너무도 어긋납니다. 더욱이 이웃에는 강적이 있으니 만일 우리의 피폐한 틈을 타서 쳐들어오면 사직과 백성을 어찌 하오리까. 원컨대 대왕은 깊이 생각하소서' 하였다.

왕이 노하여 말하되 '임금이란 백성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궁실이 응대하고 수려하지 못하면 위엄을 보일 수 없다. 지금 국상(고구려 초기의 최고 관직)이 나를 나무라는 것은 무릇 백성의 칭송만을 구하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창조리는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아니하면 仁(인)이 아니요. 신하가 임금께 간하지 아니하면 충(忠)이 아닙니다. 신이 이미 국상의 자리에 있는 이상 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웃으며 '국상이 백성을 위하여 죽으려 하는가? 다시 말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창조리는 왕이 고치지 못할 것을 알고 또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 염려하여 물러 나와, 여러 신하와 꾀를 모아 왕을 자리에서 몰아내고 을불을 맞아 왕(미천왕)을 삼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봉상왕 -

자료 참조 : 창조리는 인과 충을 논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에 초보적인 유교의식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고구려의 왕권이 강화될수록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이념적 장치가 필요하였고, 귀족들은 그 자구책으로 유교이념을 들고 나왔습니다. 즉, 충과 효를 이루지 못한 왕을 유교적 이념에 의해 교체하여 다른 왕을 세웠다는 이야기로, 고대적 유교의식을 엿볼 수 있는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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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2010.07.22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인이 등장하면 역사는 초라해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유교의 원칙을 목숨을 걸고 행하는 신하와 그뜻을 쫓아 따르는 신하들...볼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