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용성국,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함, 위치는 모름)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천리되는 곳에 있다. 앞서 다파나국이 여국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낳은 것을 성서롭지 못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 두었다.
처음에 금관국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가락국기에는 탈해가 수로왕과 싸워 쫒겨났다고 전해짐) 다시 진한 아진포 어귀에 다다랐다. 이 때는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지 39년이 되는 해다. 그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줄을 끌어당겨서 해안에 매어놓고 궤짝을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하나 있어 할멈이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키가 아홉자나 되고 풍체가 빼어나고 환했으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아이의 성씨를 모르니 처음에 궤짝이 도착했을 적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울면서 따랐으므로 마땅히 작(鵲)에서 조(鳥)를 빼 버려서 석(昔)으로 삼고 또 궤짝을 열고 나왔으므로 탈해(脫解)라고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탈해는 처음에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여 어머니를 모셨는데, 한번도 게으른 기색이 없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상이 특이하니, 마땅히 학문을 하여 공명을 세워라.>라고 하였다. 이에 오로지 학문에만 힘써 지리까지도 더불어 알았다. 양산 아래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는 길지라고 여겨 속임수를 써서 그곳을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은 나중에 월성이 되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즉위년 -
가락국 바다 가운데에 배가 와서 닿았다. 가락국 수로왕이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함께 북을 치고 맞아들여 머물게 하려고 하니, 배가 곧 나는 듯이 달아나 계림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에 이르렀다. 마침 포구 가에 한 노파가 있어 이름을 아진의선이라 하니, 혁거세의 고기잡이 할미였다. 바라보고 말하기를 <아 바다 가운데 본래 바위가 없었는데 까치가 모여들어 우는 것을 무슨 일인가?> 하고 배를 끌고 가서 찾아보니 까치가 배 위에 모여들고 배 가운데 궤짝 하나가 있는데, 길이가 20척, 넓이가 13척이나 되었다. 배를 끌어다 나무숲 밑에 두고 길흉을 알지 못하여 하늘을 향해 고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궤를 열어보니 단정한 사내아이와 함께 7보와 노비가 가득 차 있었다.
<사내아이가 대접받은 지 7일만에 말하되, <나는 본래 용성국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일찍이 28용왕이 있었는데, 모두 사람의 태에서 나왔고 5-6세 때부터 왕위를 이어 만민을 가르쳐서 성명을 올바르게 하였소. 8품의 성골이 있으나 선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교대로 왕위에 오른다오. 이 때 우리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 왕녀를 맞아서 비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기도하여 아들을 구하였더니, 7년 뒤에 큰 알 하나를 낳았더라오. 이에 대왕이 군신에게 물으니 사람으로서 알을 낳음은 고금에 없는 일이니 이는 불길할 징조라 하여 궤를만들어 나를 그 속에 넣고 또 7보와 노비를 배 안에 가득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축원하되, 인연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라 하였소. 그러자 문든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여 여기에 다다른 것이요>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자 아이가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에 올라 돌무덤을 만들고, 7일 동안 머물면서 성안에 살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마치 초승달같이 둥근 봉강이 있어 지형 오래 살 만한 곳이였다. 내려와 찾으니 바로 호공의 집이였다. 이에 모락을 써 몰래 숫돌과 숯을 그 곁에 묻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그 집 문에 가서 이것이 우리 조상 때 집이라 하였다. 호공은 아니라 하여 서로 다투며 결정하지 못하고 관가에 고하였다. 관에서는 무엇으로써 너의 집임을 증거하겠느냐 하였다. 사내아이가 가로되,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잠시 이웃 시골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사고 있으니 땅을 파보면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대로 파보니 과연 숫돌과 숯이 있으므로, 그 집을 차지하였다.
이 때 남해왕이 탈해의 슬기 있음을 알고 맏공주로 아내를 삼게 하니, 이가 아니부인이다. 탈해가 재위 23년인 건초 4년 기묘에 돌아가니 소천구에 장사 지냈다. 그 뒤에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말하기를, <내 뻐를 삼가 묻어라>하였다. 머리뼈 둘레가 3척 2촌, 몸뼈 길이가 9척 7촌이나 되며, 이가 엉키어 하나가 된 듯하고, 골절이 모두 이어졌으니, 참으로 천하에 짝이 없는 역사의 골격이였다.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대궐 안에 모셨더니 신이 또 일러가로되, <내 뼈를 동악에 두어라>하므로 거기에 봉안하게 하였다.
- 삼국유사 기이편 -
완하국 함달왕 부인이 홀연히 아이를 베어 달이 차서 알을 낳았는데 사람으로 변하였으므로 이름을 탈해라 하였다. 탈해가 바다를 통해 가락국으로 오니 키가 3척이요, 머리 둘레가 1척이였다. 거침없이 대궐로 들어가서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왕위를 뺏으려고 왔다>고 하였다.
왕이 대답하기를, <하늘이 나를 명하영 즉위하게 하여 장차 나라 안을 편안히 하고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게 하였으니 감히 하늘의 명령을 어겨 왕위를 넘겨주지 못할 일이고, 또 우리 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이에 탈해가 그러면 재주와 술법으로 겨루어 보겠냐고 하자 왕이 좋다고 하였다. 삽시간에 탈해가 변하여 매가 되니 왕은 독수리로 변하였고, 탈해가 또 참새로 변하니 왕은 새매가 되었는데 한순간도 틈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탈해가 본래 모습으로 변하자 왕도 또한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이에 탈해가 항복하여 말하기를, <제가 술법을 다투는 데 독수리에 대한, 새매에 대한 참새가 되었으나 죽음을 면한 것을 대개 성인께서 죽이기를 싫어하는 어진덕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투기는 실로 어렵겠습니다> 하고 곧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부근 교외에 있는 나루터로 가서 나라안배들이 드나드는 수로에 머물려고 하였다.
왕은 탈해가 남아 있으면서 난을 꾸밀까봐 염려하여 급히 해군 500척을 보내 쫒으니 탈해가 계림의 영토로 달아나므로 해군은 모두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사에 실린 내용은 신라의 기사와 많이 다르다.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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