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 논쟁
52년 가을 9월 정묘의 첫 병자일에 구저 등이 치쿠마나가히코를 따라와서 칠지도 1자루와 칠자경 1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들을 바쳤다. 그리고 계하여 말하기를, <우리 나라 서쪽에 시냇물이 있는데, 근원은 곡나의 철산에서 나옵니다. 이레 동안 가도가도 멉니다. 이 물을 마시다가 문든 이 산의 철을 얻어 성스러운 조정에 길이 바칩니다.> 라고 하였다. - 니혼쇼키 권9, 신공황후 섭정 52년 - |
사료해석 : 유명한 칠지도에 대한 사료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칠지도에 대하여 공공이란 글자가 문제시 됩니다. 옛날말로 공공이란 표현은 바치다, 주다, 하사하다 등 여러 가지 준다는 표현의 용어입니다. 따라서 바친 것인지, 준것인지, 하사한 것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뜻이죠.
일본의 통설은 신공황후 52년 백제가 일본에 항복의 표시로 바친 것이 칠지도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통설은 이것은 백제왕이 일본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봅니다. 이유는 당시 백제가 근초고왕기에 접어들면서 엄청난 강국이 되어가는 마당에 일본에 항복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에 맞지 않고, 칠지도에 사용된 왜왕이라는 표현이 백제가 더 우위에 있다는 표현으로 보이며, 문서의 형식 자체가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제 이소노카미궁에 있는 칠지도는 5세기 이후 제작된 것이라서 이 사료의 칠지도와는 무관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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