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과 백석의 일화
유신공(庾信公)은 진평왕(眞平王) 17년인 을묘년에 출생하였는데, 7요(七曜)의 정기를 타고 났으므로 등에 칠성(七星)의 무늬가 있고 또 신기하거나 이상한 일이 많았다. 나이 18세 되던 임신년(壬申年)에 검술을 닦아 국선(國仙)이 되었다. 이 때 백석(白石)이라는 자가 있어 어디서 온 지도 모르나 여러해 동안 낭도 중에 속해 있었다. 낭(郎)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하는 일로 밤낮으로 깊이 도모하고 있었는데 백석이 그 도모함을 알고 낭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제가 공과 더불어 몰래 저들을 먼저 염탐하고 싶사옵니다. 그런 연후에 도모하는 것이 어떠실른지요."라 하였다. 낭이 기뻐하여 친히 백석을 데리고 밤에 떠나서 고개 위에서 막 쉬고 있을 때 두 여자가 나타나 낭을 따라 왔다. 골화천(骨火川)에 이르러 유숙하매, 또 한 여자가 홀연히 이르렀으므로 공이 세 낭자와 더불어 기쁘게 이야기하였다. 이 때 낭자들이 맛있는 과자를 드리니 낭이 받아 먹고 마음으로 서로 허락하게 되었으므로 그 연모하는 마음을 말하였다. 낭자들이 말하기를, "공이 말하는 바는 이미 들어 알고 있사오니, 원컨대 공은 백석을 떼치고 우리와 함께 숲속으로 들어가십시다. 그러면 다시 참된 마음을 말하겠나이다." 하였다. 이에 함께 들어갔는데 낭자들이 문득 신(神)의 모습으로 변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내림(奈林)· 혈례(穴禮)· 골화(骨火) 등 세 곳의 호국신이요. 지금 적국 사람이 낭을 꾀어 끌고 가는 것인데도 낭이 알지 못하고 길을 가기에 우리가 낭을 만류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오."라 하고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않았다. 공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엎드려 재배하고 나와 골화관(骨火館)에서 유숙하면서 백석에게 이르기를, "지금 남의 나라에 가면서 긴요한 문서를 잊었구나. 너와 함께 집에 돌아가 가지고 와야겠다."고 하였다. 드디어 함께 집에 돌아와서 백석을 때려 묶고 그 진상을 물으니 말하되, "나는 본래 고구려 사람인데 우리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신라의 유신(庾信)은 곧 우리나라의 점쟁이 추남(楸南)이라고 말한다. 국경에 거꾸로 흐르는 물이 있어 그로 하여금 점을 치게 하였더니 아뢰되 대왕의 부인이 음양의 도를 역행하므로 그 징조가 이와 같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었다. 대왕은 놀라 괴이히 여기고 왕비는 크게 노하여 이것은 요망한 여우의 말이라 하고 왕에게 고하되 다시 다른 일로 시험삼아 물어보아 그 말이 맞지 않으면 중형에 처하라고 하였다. 이에 쥐 한 마리를 합(盒) 속에 감추고 묻기를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고 하였다. 아뢰되 그것은 틀림없이 쥐인데 그 수가 여덟이라 하였다. 이에 말이 틀린다하여 장차 죽이려고 하니 추남이 맹세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위대한 장수가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하겠다고 하였다. 즉시 목을 베어 죽이고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일곱 마리였으므로 그제서야 그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 밤에 대왕의 꿈에 추남이 신라의 서현공(舒玄公) 부인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여러 신하에게 이야기하니 모두 가로되 추남이 맹세하고 죽더니 이 일이 과연 맞았다고 하면서 그것 때문에 나를 보냈으므로 여기에 와서 너를 꾀어내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이 백석을 처형하고 백미(百味)를 갖추어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내니 모두 나타나 흠향하였다. - 삼국유사 권 1, 기이편, 김유신 - |
사료해석 : 김유신 장군에 대한 유명한 일화입니다. 백석이 김유신을 죽이려 하였을 정도로 김유신이 견제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며, 고구려에서는 이전 장수왕 때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낸 것부터 시작하여 많은 암살자들을 타국에 보냈음을 알 수 있네요. 고구려는 첩보전에 능하였고, 암살 등의 계책을 많이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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