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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대가야와 사로국의 전쟁

 

대가야와 사로국의 전쟁

탈해이사금 21년(서기 77) 8월에 아찬 길문이 가야 병사와 황산진(양산 낙동강 나루터로 추정) 하구에서 싸워 천여급을 얻었다.

파사 이사금 15년(서기 94) 2월에 가야가 마두성을 에워싸자 아찬 길원이 기병 천명을 거느리고 차니 달아났다.

기마 이사금 4년(서기 115) 8월에 장수를 보내 가야를 치게 하고 왕이 정예병 만명을 거느리고 따르니, 가야가 성에서 나오지 않고 굳게 지켰다. 마침 장마가 와서 돌아왔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금관가야의 전성기에 사로국(진한 신라국)과의 전쟁을 담은 사료입니다.

금관국 가야가 적극적으로 사로국과 전쟁을 벌이려고 했던 이유는 아마도 다른 가야 소국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전쟁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었던 듯 싶습니다. 즉, 가야 사회에 긴장감과 결속력을 더하여 가야 연맹체의 영도적 지위를 더하려 하였던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러나 가야의 소국들은 이러한 종속적 관계에 대한 반발을 초래하였고, 금관 가야는 이후 주도권을 다른 가야에게 넘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