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공과 출신의 6두품들
빈공과(賓貢科)는 매월 별시(別試)를 치러 합격자를 방(榜)의 끄트머리에 부쳤는데, 김운경(金雲卿)이 처음 합격한 이후 당말(唐末)까지 58인이었고, 5대(代)에는 32인이나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최이정(崔利貞)· 박계업(朴季業)· 김윤부(金允夫)· 김입지(金立之)· 박양지(朴亮之)· 이동(李同)· 최영(崔靈)· 김무선(金茂先)· 양영(楊潁)· 최환(崔渙)· 최광유(崔匡裕)· 최치원(崔致遠)· 최신지(崔愼之)· 김소유(金紹游), 박인범(朴仁範)· 최승우(崔承祐) 등으로, 이들은 이름을 떨친 바 있다. (《東史綱目》5上, 眞聖女主 3年 ) - 동사강목 5권 상, 진성여주 3년 - |
참고글 : 당의 빈공과 진출은 원래 신라 중기, 귀족들의 자제를 당의 볼모로서 보내면서 공부를 시키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은 개방적, 국제적 사회를 추구하여 외국인의 과거시험 제한이 엄격하지 않았고, 외국인을 위한 빈공과를 두었습니다. 신라인들은 초기에는 인질적 성격의 도당 유학생, 즉 숙위학생들이 많았지만, 후기로 가면서 김운경 등 학식있는 6두픔들이 깊이 있는 학문연구와 신분상승을 위하여 당에 건너간 사람들이 상당수입니다. 즉, 골품제의 모순을 국내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당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것이죠. 이들이 신라 말기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면서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세력 중 하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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