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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그리스인 이야기 8 - 스파르타는 사실 민주주의 국가였다.

군국주의 국가 스타르타

1. 스파르타식 국가체제가 성립된 이유는?

우리가 보통 강압적이거나 군대식으로 일을 밀어부칠 때 스파르타식이라고 합니다. 그 어원이 바로 이 고대 국가 스파르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흔히 그리스 역사를 비교할 때 민주국가인 아테네와 군사국가인 스파르타라고 비교하곤 하죠. 그리스의 폴리스를 대표하는 두 국가는 왜 이렇게 상당히 다른 정치체제를 채택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스파르타는 과연 독재와 억압으로 이루어진 사회일까요? 한번 봅시다.

스파르타의 주 구성원은 전에 이야기해던 도리아인입니다. 도리아인은 미케네 문명을 세우며 청동기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던 선주민을 초기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도리아인이 그리스 본토에 선주한 수많은 초기 그리스인들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국가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었지요. 이것을 편의상 <군국주의적 국가체제>라고 부릅시다.

일단 스파르타에서는 도리아인이 지배계층이고요. 정복당한 원주민인 미케네인들을 2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일로타이와 페리오이코이입니다.

헤일로타이는 도리아인에게 반항하거나, 원래 노예였던 신분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들은 엄청난 숫자이기 때문에, 반란이 이러날 확률도 높습니다. 스파르타의 도리아인들은 이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감시하는 체제를 마련합니다. 이들은 재산권이나, 자유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국가가 할당한 시민분배지를 경작하는 일종의 <농업 공납 노예>입니다. 일하고, 공납바차고, 일하고, 공납바치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죽는 것이지요.

다름 페리오이코이는 변두리 주민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스파르타의 지배층인 도리아인에게 협조하거나, 우호적이었던 선주민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비교적 자유민으로 상공업에 종사하거나, 군대에서 장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지배층은 아닌 까닭에 선거권이 없었고, 따라서 시민권을 주어지지 않는 자유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파르타의 군국주의적인 정체체제는 소수의 도리아인이 다수의 선주민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생간 부산물이라는 것이지요.

2. 시민계급의 발전

스파르타에서는 진정한 시민은 도리아인입니다. 그렇다고 도리아인이면 모두 동동한 시민이었는가라고 묻는 다면 글써요... 아테네에서 보았듯이 초기 폴리스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분배토지(클레로스)가 있어야 시민으로 인정받습니다. 즉, 전쟁에 열심히 참여하여 국가에 기여하고, 국가로부터 정복된 토지를 분배받는 것이 바로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첫 스타트거든요. 아테네도 초기 솔론시대에는 토지를 가진 자들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재산금권정치를 실시했다고 말했었죠?

이렇게 토지를 가진 자를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헤일로타이는 자신의 토지가 없이 토지노예였으며, 페리오이코이도 농업이 아닌 상공업이나 장교쪽의 일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파르타 자체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한 농업국가였습니다.

이러한 스파르타 시민들이 모두가 평등한 시민권을 갖게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메세니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스파르타가 메세니아 지역을 정복한 1차 전쟁과, 메세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2차 전쟁이 있는데, 두 번의 전쟁 모두 스파르타의 군대가 잔인하게 진압합니다. 메세니아 전쟁의 결과 많은 전쟁 참여 시민들에게 토지가 분배되었고, 시민의 평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국가 사회에 별 불만이 없게 되었고, 이들 시민들은 항시 전쟁 준비를 하는 군인으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보통 스파르타의 민주정치를 시민군을 중심으로 한다고 하여 <중장보병 민주정>이라고도 부릅니다.

스파르타는 시민이 이끌어가는 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이지만, 국가 자체는 시민군 위주로 이루어지는 군국주의적 국가체제입니다. <군국주의적 국가체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시민들은 보통 20-60세 정도까지 군대와 관련을 맺습니다. 특히 20-30세의 집단 군생활은 엄격합니다. 30세가 넘으면 엄격한 집단 군생활에서 약간 해방되나, 일상 생활은 계속 군과 관련을 맺습니다. 시민생활이 병영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전 시민이 공동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정복한 선주민(헤일로타이)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회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민은 일체의 생산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제적 지출은 헤일로타이의 공납으로 충당하는 노예제 사회입니다. 헤일로타이는 공납노예인 것이지요. 상업은 페리오이코이가 전담합니다. 즉, 시민이 감시하고, 정복민이 일하는 사회로 폐쇄적인 자급자족주의 사회가 바로 스파르타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차이점을 볼까요?

아테네와의 공통점을 보자면 노예제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의 노예는 자유로운 시민 소유의 노예이지만, 스파르타의 노예는 국가가 소유하여 공납을 걷는 국가 노예입니다. 아테네의 민족은 미케네 문명기의 이오니아인이지만, 스파르타인들은 미케네 문명을 정복한 도리아인입니다. 아테네는 민주정치이지만, 스파르타는 민주정치를 하면서도 시민군을 위주로 하는 군국주의적인 성격의 국가입니다. 아테네는 해군을 중심으로 한 해상상업을 중시하지만, 스파르타는 육군을 중심으로한 농업중심사회입니다. 아테네는 자유로운 학문과 문학이 발달하였지만, 스파르타는 군국주의 체제이므로 개인의 자유 표현이 약합니다.

3. 스파르타에 대한 착각 - 그들은 사실 민주정치이다.

스파르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보통 전제적인 국가입니다만, 이건 완전히 틀렸습니다. 스타르타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 <국체>라는 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체는 <징치체제>로서 그 사회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누구냐를 말합니다. 스파르타를 이끈 것은 군인으로서 활약하는 다수의 시민들입니다. 즉, 왕이나 독재자가 아닌 시민이 사회를 이끌어가므로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것입니다.

국체는 <국가체제>로서 그 국가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스파르타의 국가 구조는 시민군을 위주로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이므로, 스타르타의 국가체제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국주의 국가체제인 것입니다.

즉,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국가체제이자,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가 맞습니다. 스파르타가 전제적이라는 말은 틀립니다. 전제적이라는 것은 정치를 어느 한 1인이 이끌어간다는 것과 유사한데, 스파르타의 정치는 시민이 민회(시민회)를 만들어서 이끌어 나가거든요.

자 그럼 여기서 우리는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를 한번 볼까요?

일단 스파르타에는 초기에 국왕이 2명이 있었으므로, <왕정>이었으나, 왕의 실권은 없어서 왕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 귀족대표가 모인 장로회가 있어서 국가의 중요한 안간을 마련하는 입법부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전적으로 <귀족공화정>이라고 보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 스파르타를 이끈 것은 다수 시민의 민회입니다. 민회는 성년 시민남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민회에서는 법안을 의결하고, 공직자를 선출하며, 원로원(장로회)이 제출한 안건을 승인하는 등 최종적인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입니다.

실제 스파르타를 이끄는 행정관인 에포르는 국정운영의 집정관이자 스파르타 체제의 감시관으로 막강한 권한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 에포르를 선출하는 것도 민회입니다.

결과적으로 스파르타의 정치제제를 말하자면 <왕정, 귀족정>의 성격이 보이기는 하나 실제 <민주정> 체제인 국가라고 보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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