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야기는 설화인가, 허구인가?
1. 단군이야기의 기록 단군이야기는 고려시대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 최초의 기록이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자손이라는 선민사상, 곰 부족이라는 토템 등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고대 설화입니다. 우리는 보통 단군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많이 부르는데, 신화는 실제 역사 이야기와는 별도로,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허구적인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단군 이야기는 허구적인 이야기보다는 당시 역사상을 사회발전단계에 맞추어 설명하는 이야기이므로 신화보다는 설화가 맞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단군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신화로 보아 단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논의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반학자들에 의해 조작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 일단,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본인 학자들의 주요 주장을 적어볼까요? 2. 단군이야기는 허무맹랑한 신화일 뿐이다.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본의 논리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역사적으로 당연하다는 하나의 논리를 위해 그 <논리> 선상에 모든 한국사를 끼워맞추는 식의 주장입니다. 그 논리는 타율성론, 정체성론, 일선동조론, 만선사관 등 끝도없이 만들어졌지만, 여기서는 단군 관련 논의만 보겠습니다. 단군 시기에 대한 일본측의 가장 큰 주장은 한반도에는 청동기 시대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한반도에는 단군이라는 인물이 없었으며, 이것은 한국인들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창작물이라는 거죠. 실제 한반도는 위만조선과 한사군 등 중국의 식민지 정권에서부터 출발하므로, 한반도는 애초에 식민지 국가였다는 논리입니다. 이 것에 대한 일본인의 주장을 적어볼까요? - 조선은 석기시대 없이 위만이라는 중국인이 건너와 중국 한사군에게 멸망하였고, 금속문명이 최초의 문명으로서 고대 조선은 식민지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일본인 학자들은 주장한다. -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부) - 또 일본인들은 단군신화가 만들어진 배경을 대몽항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설정합나다. 몽골침략기에 고려인들이 외세와 싸우면서 국난극복에 도움이 되는 통일 사상이 필요했는데, 여기에 부응하기 위해 단군신화라는 근거없는 신화를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보아도 일본측의 주장은 이상합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본의 신화에는 태양신부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상한 신까지 더 황당하거든요. 일본건국신화는 더욱 역사적 근거없이 천황가의 신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부분이 더 큽니다. 뭐 묻은 자들에게는 뭐 묻은 것만 보인다고, 스스로의 역사가 그런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남의 역사도 그렇게 보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부분은 역사적으로 반박해야 하므로 단군 설화가 단지 허구가 아님을 밝혀야 되겠죠? 3. 단군이야기는 사회상을 담고 있다. 푸코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신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설화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므로 그 속에는 인간들의 바람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들의 삶이 살아 숨쉬고 있다고 말합니다. 단군설화는 신화를 넘어선 설화이고, 설화를 넘어서면 역사적 요소가 보입니다. 단군의 건국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인용하면, 위나라의 <위서>에서 가져온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위서가 현재 전해지지 않기에, 우리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잃어가지만, 단군의 조선 건국은 역사적 배경을 지녔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일본이 주장하는 한반도에는 청동기가 없었다는 것은 현재 잘못된 주장임이 밝혀졌습니다. 한반도에는 청동기 시대와 고조선의 유물 뿐만 아니라 신석기, 구석기 유물도 다수 나오고 있으니까요. 또 관자, 산해경, 위략 등의 중국 사서에 고조선과 중국이 접촉한 사실들이 많이 보입니다. 단군이 허구라면 중국 정사들도 다 허구가 되는 것이지요. 일본은 환인이라는 표현이 고조선 당시에는 없던 용어를 고려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 자체가 허구이며, 신화 구조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환인이라는 표현은 고려 당시 <하늘님>을 표현할 때, 종종 쓰는 보통명사이므로, 하늘에 계신 신을 지칭하는 일반 용어일 뿐입니다. 환인은 불교식 용어로 <제석천>이라는 신을 뜻하는 용어인데, 단군신화에서는 단지 하늘에 계신 신을 부르는 용어로 사용 했을 뿐, 허구적으로 만든 말이 아닙니다. 일본의 신 <아마테라스>는 일본 고대사람들이 첨부터 그렇게 불렀을까요? 아마, 아주 고대인들은 다른 용어로 불렀을 것입니다. 또 일본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손, 사람과 곰의 결혼 등의 역사성을 부정합니다만, 일본 신화를 보면 일본이 과연 이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생각됩니다. 일본의 신들은 남매끼리 결혼하여 계속 신을 낳고, 임신하고, 또 가족끼리 결혼하기를 반복합니다. 사실, 동아시아에는 곰이 나오는 신화와 하늘에서 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소위 <친신강림(일본 천황가가 주로 쓰는 말입니다.)>은 보편적 이야기입니다. 왜냐면, 당시 동아시아 고대 사회에서는 선민사상을 가진 부족 위주로 정복사업을 벌였고, 곰 등 토템을 가진 타부족과의 항쟁과 연합이 계속되는 역사가 있었으니까요. 단군신화에 나오는 <천강신화>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는 고대 보편적 관념을 따른 것입니다. <인수교혼>이라고 하는 사람과 동물의 혼인은 당시 전쟁과 연합이 계속되는 사회상을 상징하는 것 뿐입니다. 푸코는 이러한 설화의 역사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단군신화에는 한인, 황웅, 풍백, 우사, 운사 등 유교, 불교, 도교 사상이 들어있다고 일본측이 주장하면서, 허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적 사상을 고려인들이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풀어 쓴 것일 뿐입니다. 실제, 삼국유사의 단군이야기는 고기, 위서, 본기 등 이전 사서들을 인용하면서, 그 용어를 스님인 일연이 사는 고려시대에 맞게 수정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화는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신화구조 자체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일본학자들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단군설화는 <천강신화> - <인수교혼> - <단군의 탄생>이라는 3개의 에피소드 구조로 형성된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이것은 설화 구조 속에서 그 당시 사회상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민족적 기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지침서일 뿐입니다. 이것을 액면 그대로 곰과 호랑이가 쑥을 먹었다라고 이해해 버리면, 설화 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맥락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4. 단군이야기는 역사적인 증거가 부족하다. 단군이야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재, 그 역사성의 고증 문제입니다. 단군의 건국은 기원전 2333년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실학자인 이익 등이 <단군의 연대는, 중국 고대 태평성대 시기의 요, 순 전설시대와 맞먹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부합하기 위해 내세운 연대인데요. 실제, 중국에서는 전설 시대인 황제, 곡, 요, 순, 하나라 시대를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지만, 하나라 정도까지만 역사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 역시 단군의 역사성이 아직 확연히 드러나지 못하였음은 중국가 마찬가지네요. 학교 교과서에서 우리는 청동기 시대의 상한선을 기원전 10세기라고 배웁니다. 어떤 역사학자도 청동기를 기원전 2333년까지 보진 않습니다. 그 정도 상한선의 유물은 발굴된 적이 없으니까요. 즉, 우리 민족과 관련된 청동기는 아무리 올려잡아도 고조선 건국기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삼국 정립기에야 겨우 고대 시기가 정착되었다고 말하며, 고조선은 고대 국가가 아니라 석기를 쓰는 원시국가였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단군신화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발굴되지 못한 청동기 유물의 부족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고학적 기술은 아직도 수준이 낮고, 지금까지 발굴된 것도 풍납토성 등 아주 초보적인 유물만 발굴되었습니다. 더 깊이 말하자면, 우리는 확실한 역사적 근거로 우리 역사를 복원해야 하는데, 현재 수준이 그렇지 못한 관계로 알 수 없는 역사는 비워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비어있는 부분의 역사가 많다보니 고대사에 대한 각종 루머들이 너무 많습니다. 단군시대의 족보가 나돌기도 하고, 단군시대 한반도 남부에는 전설의 고대 국가가 있었다고 까지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 한국사에서는 단군의 고조선 시기 남쪽 진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설명조차 없습니다. 그 때 남쪽 진국은 고조선과 무역을 했다면, 뭔가 수준있는 국가였을텐데요. 우리는 단군조선이 중국 요임금기에 건설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도, 긍정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증명되지 않은 전설시대인만큼, 우리 역시 차분히 다 연구하고 조사해서 진실이 숨겨져 있는 역사적 자료들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단군왕검을 보통 해석할 때, 단군은 제사장으로, 왕검은 정치적 수장으로 이해하여 제정일치의 군장 칭호라고 보통은 여기죠. 그러나 우리 고대사가 거의 가설 수준이듯 이것도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한국고대사는 역사적 사실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여 이야기 하기에는 너무 자료가 빈약합니다. 사람들이 고대사를 놓고 소설을 쓰는 이유가 이 증거의 부족때문이죠. 5. 단군이야기의 기록들과 주요 내용들 단군설화는 삼국유사에 나오지만, 삼국유사 역시 단군 설화를 고대 사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고기, 본기, 위서 등에서 인용하였음을 제시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죠. 중국 사서인 위서가 단군의 존재를 주장한다면 사실일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그러나 위서는 지금 중국에 남아있지 않고, 안타깝게도 소실되었습니다. 제왕운기의 본기에서 단군설화는 삼국유사랑 조금 다릅니다. 삼국유사의 단군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이야기이고, 제왕운기는 단군설화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 차이점만 보죠.(일연은 스님이교, 이승휴는 유교영향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그 차이점이 이해됩니다.) 제왕운기에서는 환웅과 웅녀가 아니라, 단웅천왕의 손녀와 단수시이 결합하였다고 말합니다. 환웅은 단군과 연결시켜 단웅이라 적었습니다. 유학자들은 중세 유교적이고 합리적인 역사관을 추구하였던 사람들이다보니, 사람이 곰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그대로 적지 않고, 좀더 현실적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이러한 단군이야기는 그 시기나 저자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집니다. 조선시대 응제시주,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의 단군신화가 각각 조금씩 명칭이 다릅니다. 그러나, 단군이야기의 존재나 사실성을 부인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중국 산둥성의 무씨 사당은 단군신화가 중국내에서도 존재하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그 벽화에는 삼부인이 등장하며, 풍백, 운사, 우사가 보이고, 곰과 호랑이가 등장합니다. 이 무씨사당은 기원후 2세기에 제작된 것이니, 이 무렵 단군설화의 골격이 되는 이야기는 이미 고대부터 존재하였고, 이런 기원의 설화를 가진 민족들이 시베리아 남부, 중국 대륙 일부,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치우설화에서도 단군과의 연계성이 잘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 책을 참조하여 서술해보겠습니다.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권, 솔출판사 참조) 치우는 중국 3황 5제 중 맏형격 되는 황제가 신농씨를 정벌할 때 살았던 인물입니다. 용어하도와 산해경을 보면, 치우의 근거지는 난하유역이라고 하는데, 이 지역은 훗날 고구려인인 맥족 세력의 근거지입니다. 참고로 제시한 책을 보면, 치우 형제가 81인이라는 기록은 치우 세력이 형제적 질서를 가졌음을 보여주는데, 후대 고구려의 간등이 형, 대형 등 형계열의 조직과 유사합니다. 또, 고구려 말로 무신을 주류라고 하는데, 이것이 치우라는 어원이 되었다고도 주장하네요.(좀 신방성 없어보이긴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교수님들이 이런 상상력으로 주장을 전개하시다니...) 치우설화에서는 풍백, 우사 등이 보이는데, 풍백은 공기, 우사는 물과 관련된 농경사회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특히 운사는 번개, 벼락 등의 개념으로 치우설화에서 빠진 것을 단군설화에 넣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운사는 벼락의 개념을 통해 당시 사회가 공식적으로 형벌을 부과할 수 있는 국가 사회로 나아감을 상징한다고 합니다.(이것도, 좀 이해가 안가기는 합니다만.... 최고 교수님들이 쓴 것이니... 그런가보다하고 이해합시다.) 여기까지 제가 정리할 수 있는 단군이야기를 쭉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이제 단군신화는 그만 넘어가고, 실제 역사로 잠입해보죠... 고조선 역사로 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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