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세사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인가?
1. 개관 - 무사가 주도하는 시대가 오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고대사를 보았고, 이제 일본의 중세사를 들어가보겠습니다. 일본의 중세와 고대를 나누는 기준은 지배집단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네요. 고대에서의 일본사회는 수많은 귀족가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은 천황가가 되거나, 천황가를 보좌하면서 권력을 유지해갔고, 귀족간이 수많은 암투와 전쟁이 고대사회를 이끌어갔음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천황은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하려고 하였고, 유력 귀족가문은 천황을 돕거나, 천황가에 반기를 들면서 역사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역사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중세시대는 천황과 귀족이 주도하는 사회가 아니라, 천황을 능가하는 무사 세력이 주도하는 사회입니다. 지금까지는 천황이나 귀족들이 기르는 개 취급을 받고 살던 무사들이, 자신들이 오히려 기존 사회세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12c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일본의 중세사가 시작됩니다. 일본 중세사는 곧 무사들이 주도하는 시대라고 보면 됩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에는 유력한 귀족가문(공가) 출신의 정권인 겐무 정권이 잠깐 부활하기도 하지만, 곧 무로마치 막부에 의해 타도되어 또 다시 무사 시대가 시작됩니다. 막부란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군사정권이라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 이후, 수많은 무사들이 등장하는 전국시대를 거쳐, 에도 막부 등 군사정권이 끝없이 이어지다가, 1868년 메이지 유신기에 접어들면서 무사계급이 사라지게 됩니다. 막부 시대에 또하나의 재미있는 점은 막부가 귀족가문(공가)를 누르고 권력을 잡게 되면서, 서민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서민들은 단결하여 귀족 세력을 도시에서 몰아내기도 하고, 무사집단의 횡포에 맞서 도시를 자치화하기도 합니다. 또 가혹한 탄압에 맞서 잇키(봉기, 반란, 저항을 뜻하는 말)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서민들은 사카이같은 자유도시를 만들기도 하고, 중국 명나라와 무역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장사로 돈을 번 상인들은 용병을 모아 무사집단과 대등하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세력의 성장은 강력한 다이묘들의 출현으로 근대사회까지 나가지는 못합니다. 즉, 서민들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어 가면서도, 당시 사회를 주도하고 있던 무사들에 눌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까지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민이 주도하는 일본사회는 메이지 유신 이후가 되는 것이며, 일본 중세사회는 무사가 주도하고, 서민계급이 성장해가는 사회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2. 일본 중세사회의 특징 일본중세사회의 등장 배경은 일본 고대 사회 특유의 <율령체제>가 동요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 끝장에서 저는 일본 고대 사회의 멸망을 천황가와 귀족가의 대립 및 무사집단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보았는데,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당시 <법질서가 동요>하고, 신분질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즉, 당시 사회체제인 <율령체제>를 새롭게 등장한 무사 집단이 굳이 지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체제가 필요하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일본 중세사회의 특징을 <율령체제>를 대신할 뭔가 중세적인 요소가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새로운 변화를 한번 요약하면 3가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물론, 정말 일본사를 전공하신 분이 본다면 이거보다는 훨씬 많겠죠? 지식이 짧아서 3가지로 요약합니다.) 1. 과거나 유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무사집단의 자의에 의한 사회질서 유지 2. 무사윤리에 기초한 일본식 주종관계와 봉건제도의 성립 3. 중국 송, 원에서 전래된 선종불교가 확산되면서 무사 윤리와 서민 윤리의 확립입니다. 3. 일본식 봉건제도의 성립 고대 일본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키워드가 불교라고 했죠? 일본 중세를 한 눈에 파악하는 키워드는 봉건제도입니다. 이 봉건제도란 명칭은 물론, <서양식> 개념이지만, 일본사를 전공하시는 분들은 이 개념을 거의 수용하는 듯 합니다. 일본의 봉건제도는 서양의 <기사계급>과 마찬가지로, <무사>들이 중심이 되어 <토지>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제도입니다. 봉건제도가 등장한 배경부터 볼까요? 헤이안 시대에 지방에서 장원을 개발한 호족(귀족)이나 자영농(개발영주)들은 자신의 토지를 다른 유력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군사적인 무장이 필요하였고, 유력한 국왕가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무사단을 조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처음에 무사단은 주인의 개(?)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가서 싸우라면 싸우고, 몸빵하라면 몸빵하고, 할복하라면 할복하는 불쌍한 존재들이였지요. 그러나 12세기에 이르러 국왕가와 유력귀족가문들이 서로 다투는 시대 상황 속에서 그들은 점차 세력이 성장하였고, 일부 세력은 교토로 진출까지 합니다. 사실 일본 막부정권을 연 사람들은 모두 성씨를 가진 국왕가의 후손들이였지만, 그들 휘하의 주력 부대는 그동안 개 취급 받았던 무사들이였습니다. 무사들은 12세기 혼란 속에서 국왕가와 귀족가문을 위해 죽으라고 싸우던 도중에 자신들의 힘이 오히려 공가(귀족가, 천황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이 중 무사단의 우두머리로 정권을 잡은 집단이 전에 이야기한 타이라씨, 미나모토씨 등입니다. 이 중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다른 집단을 모두 정발하고 정이대장군 호칭을 받아 가마쿠라 막부를 건설하여 일본 중세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럼 다음으로 봉건제도의 특징을 한 번 볼까요? 봉건제도는 미나모토노씨 집단이 국왕에게 자기 집단의 특권을 얻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미나모토노 요리모토는 자신의 부하 무사들은 슈고나 지토로 임명하는 권한을 국왕으로부터 얻어냅니다. 그리고 슈고와 지토들은 땅을 준 쇼군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교토, 가마쿠라 등 주요지역을 교대로 지키거나 전쟁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용어정리 쇼군 : 막부를 다스리는 실제적 지배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슈고 : 쇼군이 임명 → 지방 치안을 유지하는 댓가로 지방장관에게 보수를 받는 직책 지토 : 쇼균이 임명 → 지방에서 장원을 관리하는 댓가로 장원지주에게서 보수를 받는 직책 봉공 : 슈고, 지토들이 쇼군의 은혜에 보답하는 의미로 쇼군의 직할지를 교대로 지키거나 전쟁에 참여하는 것 이러한 일본식 봉건제도는 서양 봉건제도와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봉건제도는 (서양식의) 쌍무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의리를 통한 봉사관계라는 점입니다. 즉, 쇼군은 계약을 맺어 슈고, 지토를 임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쇼군은 전공 등에 따라 슈고와 지토를 임명하고, 슈교와 지토는 임명에 대한 의리로서 주군(쇼군)에게 봉사하는 것이지요. 이 의리의 매개체는 여성입니다. 중세시대 일본 지배층의 여성은 쇼군, 슈고, 지토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하여 서로 유력가문의 딸들을 주고받아 혈족관계를 과시하곤 하였습니다. 당시 여성은 영주의 세력확대나 지방 세력간의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의 도구였답니다. 자, 그러면 이 쯤 하고 일본 중세시대를 하나, 하나 파헤쳐 보겠습니다.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 한번 가볼까요? 일본 중세사로 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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