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제국의 사회 문화 구조
1. 비잔틴 제국의 황제 비잔틴 제국의 정치하면 왕중의 왕이라는 <바실레우스>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황제가 모든 것을 총괄하며 교회와 주변국의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황제교황주의>가 비잔틴 제국의 특징이지요. 비잔틴 제국은 로마의 관료제를 계승했지만, 그 지배사상은 동방의 신성정치를 연상케하는 절대군주체제였습니다. 즉, 동방적 제정일치, 신정일치적인 성격이라고 볼 수 있죠. 황제는 관료제와 상비군을 지배하면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때가 전성기였지요. 관리들도 환관을 등용하여 황제의 측근으로 활용하는 동방적 궁정정치의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황제 자리는 원칙적으로는 선출제였지만, 실제로는 거의 세습되었습니다. 황제는 귀족출신의 장교들을 중무장 기병으로 활용하여 국가수비를 맡기였는데, 실제 주력부대는 국가로부터 둔전을 받아 경작하는 자유농민이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귀족기병들이 대토지 소유를 확대한 8c 이후에는 둔전민이 귀족의 사병화 되는 현상이 심해져서, 군관구의 귀족관료가 국가에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 둔전민 밑에는 물자수송과 말의 사육 등을 담당하는 종자가 있었고, 귀족 - 둔전병 - 종자라는 계급적 군질서가 곧, 비잔틴 제국의 행정질서와 일원화되어 있었습니다. 둔전병들은 뛰어다니는 경보병과 방배를 들고 무장한 중보병이 있었는데, 특히 무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중보병들이 주력부대였습니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은 주변의 적들이 워낙 많아서 전투를 통한 국력 유지보다는 주변국과 협상하는 외교술이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비잔틴 제국이 1000년을 버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처세술입니다. 6c 까지만 해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영토확장으로 엄청난 대국이였지만, 8c 이후 둔전병의 약화로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 서방교회, 북방이민족 등등의 관계를 원할히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하였습니다. 십자군 전쟁도 결국 보면 이슬람의 침입에 대하여 서방교회에 구원을 요청한 것에서 비롯되었지요.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철저한 <황제교황주의>를 채택하여 모든 교회의 서임권을 황제가 갖고 있었습니다. 서유럽에서 서임권 문제로 카노사의 굴욕부터 시작하여 엄청난 정, 교 대립이 있었던 것과는 반대이지요. 비잔틴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의 수좌대주교 임명권, 종교회의 소집권, 회의내용 결정권 등을 황제가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잔틴의 강력한 황제권은 때로 서방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성상숭배금지문제, 네스토리우스파 논쟁, 노르만의 이탈리아 진출 등의 문제로 결국 서방교회와 등을 돌려버립니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그리스정교>, 서방교회에서는 <카톨릭>이 크리스트교의 주 종파로 자리잡습니다. 그리스정교는 이후 러시아정교, 세르비아 정교, 루마니아 정교 등 각 국가의 정교가 되어 동유럽의 크리스트교가 됩니다. 2. 비잔틴의 국가 통제 경제 비잔틴 제국은 제정 로마 말기의 관료체제와 사회체제를 물려받은 만큼, 경제 역시 로마 말기의 통제경제정책을 계승하였습니다. 특히 콘스탄티노플은 통제무역과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동서무역을 주름잡았습니다. <통제무역>의 특징은 조합에 의한 물품의 독점생산입니다. 즉, 국가가 안정된 생산물목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공업을 통제하였기 때문에 생산은 안정적이나, 기술적인 향상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비잔틴의 문화가 이미 로마 문화의 화려함을 뛰어넘어 진보한 단계에 있었고, 동서문화의 요충지에 있었던 만큼 비잔틴 제품은 서유럽에서 칭송하고, 모방하는 <신의 문화>였다고 합니다. 비잔틴에서 곡물, 견직물 등은 모두 국가의 전매사업이였고, 국가는 동서 각종 상품을 집산하여 세금으로 부과했습니다. 그 결과 비잔틴 제국은 재정적으로 안정된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국가통제정책으로 비잔틴 제국의 유명한 문화적 산물은 대부분 국가의 계획에 의해 탄생한 경우가 많습니다. 3. 비잔틴의 문화 비잔틴 문화는 동서 문화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좋을 듯 합니다. 일단, 비잔틴 제국의 위치 자체가 과거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적 헬레니즘 문화에 동방에서 넘어온 문화를 가미하고, 그리스 정교를 이끄는 황제에 의해 규제되는 절제된 문화가 비잔틴 문화입니다. 일단, 국가와 교회에 의한 고전연구, 필사, 주석 작업 등으로 그리스 문화가 상당수 보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의 보존은 이후 초기 이슬람, 중세 유럽, 르네상스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서유럽 역사가들은 비잔틴을 로마보다 처지는 제국으로 묘사하지만, 사실 이 비잔틴 제국의 문화는 당시 서유럽, 북유럽, 중앙아시아, 이슬람을 통털어 어느 문화보다도 화려함과 진보성을 보입니다. 그들은 그리스, 로마, 서유럽, 이슬람의 모든 문화를 흡수하고 융합하여 나름대로의 독자적 문화를 완성했습니다. 실제 주변 민족이 이 비잔틴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습니다. 특히 동유럽의 슬라브 세계는 이 비잔틴 문화의 영향이 상당했습니다. 동유럽의 독자적 문화 기반을 보면 그 생성과정에서 그리스 정교와 비잔틴의 사회구조가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 투르크 족이 유럽에 진출하자 발칸 반도의 동유럽 국가들은 이 비잔틴 제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민족 운동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이반 3세는 비잔틴 제국의 후계자를 자청하기도 했으며, 모스크바를 제 3의 로마로 칭하기도 합니다. 미술이나 건축에서는 <비잔틴 양식>이 유명합니다. 비잔틴 양식의 특징은 내부의 모자이크와 외부의 둥근 돔입니다. 성 소피아 대성당, 성 비탈레 성당, 성 마르코 성당 등이 유명하죠. 이것은 그리스적인 문화에 동방문화인 시리아, 팔레스타인 문화가 융합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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