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개국 전설
1. 구태 개국 전설 백제의 개국 전설은 3계통이 있습니다. 중국사서에는 구태가 옛 대방 땅에서 백제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태 선조인 동명왕을 부여왕, 또는 고구려 왕으로 파악합니다.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라는 말이 나오며, 백제는 고구려국에서 나왔다라는 말이 중국 사서에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측의 오류일 가능성이 큽니다. 부여왕 위구태아 구태의 이름이 비슷해서 생긴 헤프닝일 수 있고, 또는 우태를 구태로 잘못 표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 고이왕을 구태라고 생각한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설화입니다. 구태 설화
사료해석 : 백제 설화에서 그 기원을 찾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건국 시조가 비류, 온조, 구태 등 사료마다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건국자가 누구이던 간에 백제 설화는 그 민족의 기원을 부여 - 고구려 - 백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설화 삼국사기에서는 세주에서 비류를 시조로 하는 설화를 적고 있습니다. 비류, 온조는 우태와 소서노 사이의 형제로서 소서노가 주몽에게 개가한 뒤 비류가 미추홀에 정착하여 나라를 건국했다고 하는 설화입니다. 삼국사기의 건국 설화
사료분석 : 백제는 나라의 이름, 곧 국호(國號)를 몇 차례 바꾸 었으며, 또 기록에 따라 여러가지 별명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시대를 떠나서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역시 백제(百濟) 입니다. 백제라는 국호의 의미에 대해서는 기록에 따라 설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먼저, 한국고대사 연구의 기초자료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그의 형인 비류(沸流)가 다스리던 백성을 합쳐 더 큰 나라를 만들 때 비류의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 하여서 나라 이름을 백제로 고쳤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한편, 중국측의 역사서인 수서(隋書)에는 백제를 간략하게 소개한 [백제 전(百濟傳)]이 있는데, 거기에는 처음에 백여 호(戶)가 바다를 건너[百家濟海] 남하하여 나라를세웠기 때문에 백제라고 하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백제의 국호에 대한 삼국사기와 수서의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는 아직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양쪽 모두 설화에 입각한 설명이기에, 어쩌면 양쪽 모두 잘못된 설명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백제가 처음부터 백제(百濟)라는 국호를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처음 나오는 백제의 국호는 십제(十濟)입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 온조왕 즉위년조. 위의 기록은 내용상 백제의 건국설화라고 하여도 무방한데, 고구려·신라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매우 특이하다고 할 만합니다. 즉, 백제의 건국설화-온조설화(溫祚說話)에는 묘하게도 신비라든가 기적과 관련된 부분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매우 사실적이고 소탈한 방법으로 백제 건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백제의 건국 설화가 뒤늦게 채록되었거나 중국화된 합리주의적 시각에서 채록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백제의 건국설화가 고구려, 신라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사실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여하튼, 위의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백제의 국호는 애초 십제(十濟)였으며, 나중에 국력이 더욱 커지자 백제(百濟)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십(十)에서 백(百)으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설명이야말로 중국화된 시각, 곧 한자(漢字)에 입각한 해석이자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그렇기에 인위적인 분위기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즉, 나라가 성장함에 따라 '십(十)'에서 '백(百)'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명은 마치 '백'을 염두에 두고 숫자논리에 입각하여 '십'을 지어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기록은 중국에서 진수(陳壽)라는 이가 3세기 후반에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三國志)입니다.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삼국지에는 [한전(韓傳)]이라 하여 우리의 삼한(三韓)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부분이 있는데, 그중 마한(馬韓)에 속한 54개 소국의 이름을 열거하던 가운데 백제국(伯濟國)이라는 국호를 적어놓은 대목이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백제(伯濟)와 백제(百濟)는 한자만 약간 다를 뿐 같은 음(音)으로 된 글자이며, 또 백제국의 위치가 한강유역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백제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당수의 학자들은 보통 백제국을 백제의 초기 단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백제국이 국력을 신장한 결과 국호를 한자 뜻이 더 좋고 세련된 백제(百濟)로 바꾸었다는 것이지요. 한편, 일본 정부에 의해 서기 720년에 편찬된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위례국(慰禮國)'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이는 위례성(慰禮城)에 도읍한 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대에는 도시의 명칭을 그대로 나라 이름으로 사용한 예가 적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위례국이라는 이름도 그다지 어색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만약 일본서기의 위례국이라는 표현이 어떤 근거를 가진 것임을 인정할 경우, 그것이 백제라는 국호보다는 앞선 시기의 국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도 될 듯합니다. 다만, 그것이 정식의 국호였는지, 아니면 별명과 같은 것이었는지는 아직 가리기 어렵습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성왕(聖王) 16년(538)에 도읍을 웅진(熊津) 곧 지금의 공주지방에서 사비(泗 ) 곧 지금의 부여지방으로 옮기면서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다시 한번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부여'라는 국호는 다른 기록에 별반 남아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국제사회에서는 물론 백제 내부에서도 그리 오래 사용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도읍을 옮길 때 국가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는 뜻에서 국호도 바꾸었지만, 백제라는 국호가 지니는 전통적 이미지가 이미 국내·외에 널리 퍼져있어 오래지 않아 환원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국호들처럼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매우 특징적인 명칭도 있었습니다. 바로 응준(鷹準)과 나투(羅鬪)라는 이름입니다. 고려시대의 저작인 제왕운기(帝王韻紀) 에는 "후대의 왕 때에 국호를 남부여라고 한 적이 있으며, 또 응준 혹은 나투라고 칭하기도 하였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응준과 나투는 모두 조류(鳥類)의 일종인 '매'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응준과 나투는 정식 국호라기 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백제를 지칭할 때 사용한 일종의 별명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침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신라가 선덕왕(善德王) 14년(645)에 건립한 황룡사(皇龍寺) 9층탑의 제5층에 신라의 경계해야 할 적대국으로서 응유(鷹遊)를 적어놓았다는 기록이 있는바, 여기의 응유를 앞서의 응준과 같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3. 온조 중심의 개국설 이 설은 비류와 온조가 주몽과 졸본 왕녀 사이에서 탄생했다는 설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건국 설화입니다. 부여에 있던 주몽의 아들 유리가 남하하면서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건국하였는데, 처음에는 국호를 십제로 하였다가 규모가 커져 백제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역사적으로 하북 위례성에서 하남 위례성(풍납토성)으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위례는 우리라는 단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백제 건국에 전설이 많은 이유는 백제 왕의 혈통이 중간에 바뀌거나 국가 면모가 중간에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4. 벡제 초기사의 이해 백제 초기사는 연속설과 단절설의 2 설이 있습니다. 연속설이란 백제가 처음부터 북방에서 남하한 부여족에 의해 삼한 여러 나라 중 한 나라로 건국되어 발전했다는 설입니다. 단절설은 한인 토착 세력이 백제를 건국했는데, 4세기 이후 내려온 부여족이 왕권을 탈취하여 새로운 백제의 지배층이 탄생했다는 설입니다. 또 백제 초기사는 왕위계승문제도 불명확합니다. 백제 7대 사반왕에서 갑자기 8대 고이왕으로 왕권이 넘어가다니, 백제가 중앙집권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통 온조왕계가 내부 왕위 계승문제가 발생하였고, 온조계의 직계에서 비류계의 방계로 왕권이 넘어간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또 다음 근초고왕은 다시 왕권이 계보와는 상관없이 교체되는데, 이것은 다시 온조왕계가 재집권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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