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개국 전설 - 혁거세, 김알지, 석탈해, 알영설화모음
1. 개국 설화의 특징 신라 개국의 특징은 계통이 다른 여러 유이민 집단이 신라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개국 설화도 혁거세, 알지, 탈해, 알영 설화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 세력이 모여 합의로 세운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어납니다. 신라는 6부 제간 세력이 국사를 공론으로 처리하였고, 만장일치의 합의와 화백회의가 존속했습니다. 알영설화도 혁거세 설화와 마찬가지로 존중되는데, 이것은 왕과 왕비 및 그 자손은 성스럽다는 중고기 성골의 관념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국 후에도 석씨계, 김씨계 등이 계속 유입되는 과정을 설화에서 보여줍니다. 2. 혁거세 설화의 특징 신라의 개국 설화는 초기 6촌장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6촌장은 한 영역의 최고 지배자이자 독자성을 가진 소국의 지배자였을 것입니다. 신화에서는 이 6촌의 지배자가 모여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는 연맹체적 사회를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신라의 성장 과정을 보면. 정복사업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초기 경주 평야 - 낙동강 진출 - 진한 전역의 지배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왕권이 강해지고, 이것이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식으로 왕명 변천을 통해 보여집니다. 지증왕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비로소 국호가 신라로 정해진 것으로 봐도, 신라는 소국체제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라 건국기의 사로 6촌 시기부터 신라는 이미 연맹왕국 단계로 시작된 광역국가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것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철기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하호층이 성장하였고, 하호층이 낙랑과 직접 접촉하면서 선진문화를 수용하는 주체가 되어갑니다. 신라 지배층은 하호의 통제가 어려워져서 6국이 군사력을 통합하여 공동으로 권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소국의 지배자(간)들이 최고의 지배자로서 혁거세를 거서간(간 중의 간)으로 선발한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책임은 국왕에게 있어 국왕이 진한 지역을 총괄합니다. 단, 각 지배는 실제 이전 지배 세력에게 위임한 상태이므로, 각 소국에서 간들은 실제 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라는 이러한 <중층적인 구조> 속에서 국가체제를 유지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각 설화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볼까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혁거세, 신라, 건국 설화 중 하나의 주제어를 치시면, 모든 건국설화를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
박혁거세 설화
시조, 성<박>씨,휘<혁거세>.<전한><효선제>,<오봉>원년,갑자,사월 병진[또는 정월 15일] 즉위, 부르기를 거서간이라 했고, 나이는 13세였고, 국호는<서라벌>. 먼저는 바로 <조선> 유민이었다. 나누어 사니 산골짜기를 사이로 하여 6촌이다 첫 번째 가르되 <알천><양산촌> , 두 번째 가르되<돌산><고로....(중략) <나정>은 수풀 사이에 있었다. 말이 (히히힝) 우는 즉 가 보니까 홀연히 아니 보였다. 다만 있으니 큰 알이었다. 쪼개니 '이슬 과부아이'[이슬이 과하게 불어나]가 출하여 나왔다. 어찌 곧 거두어 마을을 기르지 않겠는가 급년 십여[삼]세에 기상 그렇게 일찍 이루었다. 6부인은 이로써 터가 생겼다. 신으로 따라 밀어 높이었다.이는 바로 세워야 할 임금이었으니 <진>사람 이었다. 이르기를 '표주박'이라 하여 '박'으로써 하였다. 처음에 큰 알 같은 표주박이었다. 옛날에 이로써 朴을 성으로 하였다.거서간, <지지>라 말하니 '임금'이다 [혹은 부르기를 '귀인'이라 갈 하여 칭하였 다] - 삼국사기 - |
사료해석 : 고대 탄생 신화로서 신화적 요소가 상당히 많아 해석이 분분합니다. 고전적 해석은 거서간(귀인) 단계에서 신라는 점차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등의로 칭호가 바뀌면서 영토가 넓어지고 왕권이 강화돠는 것으로 보아 왕명의 변화 자체가 곧 신라 발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초기 사로 6국의 언급은 곧 조그만 소국 규모 국가를 상징한다는 것이죠.
최근의 해석은 사로 6촌을 그냥 6부로 파악하면서 진한 소국 6국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즉, 초기부터 부족장이 연합한 큰 국가가 사로국이며, 이들 부족장들이 폐쇄적인 귀족 계급을 형성한 것이 골품제도라는 것입니다.(실제 골품제도의 아찬, 파진찬 등 "찬"이라는 명칭이 족장계열의 명칭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교과서적 해석은 생략하겠습니다.
사로국의 건국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이 위에 군주가 없어 백성을 다스리려 하니 죄다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고 있소.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 삼국유사 - |
사료해석 : 이 사료의 가치는 신라(사로국)의 건국이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라의 발전을 논할 때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으로 왕호가 변천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이것은 영토확장과 연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즉 왕호변천은 곧 신라사회의 확대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신라의 발전은 정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관점이지요.
그러나 이 사료는 6촌이라는 진한 소국 연합이 곧 혁거세를 추대함으로서 신라 자체가 처음부터 큰 국가의 규모로 출발함을 보여줍니다. <뿌리깊은 한국사>를 보면, 신라는 철기문화의 보급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하호층이 동요하여 지배계급의 위기가 찾아왔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고 진한 지배층이 연합하여 사로국을 건국했다는 군요. 그 증거로 당시 국가 경계가 애매하였다는점, 또 골품제도의 "찬"계열은 모두 족장연합계열로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박혁거세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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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나정 숲은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사적 제245호입니다.. 2000년 세계문화유적 등록되었습니다. 오래된 소나무 숲 속에 작은 정자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자그마한 우물 하나와 기념비도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숲입니다. 천 년 장대한 신라의 역사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죠.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기원전 69년 춘 삼월에 나정이란 곳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태어나자마자 동천이란 곳으로 옮겨져 씻겨집니다. 말하자면 세례를 받은 것이죠.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도 태어나서 성스러운 물에 목욕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박혁거세가 백마가 난 알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백마가 하늘에서 운반해 온 알에서 태어난 것인지는 분명하기 않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 즉위 5년(기원전 53년) 기사에 왕비인 알영부인의 탄생설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알영과 혁거세가 똑같은 날에 계룡의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 반면, <삼국사기>에는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죠. 오른쪽과 왼쪽 겨드랑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김부식의 시기에는 우파(오른쪽 집단)세력이 강했고, 일연스님의 시기에는 좌파(왼쪽 집단)가 강해서 똑같은 사실을 좌우를 달리해 기록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알영이란 이름은 무슨 뜻일까요? 고대신라에서는 남자를 알노(閼老. 알치), 여자를 알영(閼英. 아로)이라고 했습니다. 알치에서의 ‘치’는 동냥치, 양아치, 그치, 저치 등에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고, 아로에서의 ‘로’는 남해왕의 여동생인 아로阿老, 남해왕의 왕비인 아루阿婁, 고구려의 소서노召西奴, 부분노扶芬奴 등에서 그 용례를 볼 수 있죠. 알閼은 ‘아리’의 한 문식 표기이며, 아리란 우리 말은 ‘알’, ‘알짜’, ‘알통’, ‘처음’을 뜻합니다. 처음이고 알짜란 뜻의 ‘아리’에서 파생된 우리말로는 ‘아이’, ‘아씨’가 있습니다. 아씨는 원래 갓 태어나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자(동자. 어린아이)를 뜻했다고 합니다. 이런 뜻에 비추어 보면 알영정이란 우물도 부락의 초입부에 있는 곳이었고, 여자들이 자주 물을 길렀던 곳으로 보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알영을 서술성모西述聖母의 현신으로 봅니다. 서술성모는 쉽게 말해 마리아와 같이 동정으로 잉태할 수 있는 동양식 성처녀이지요. 알영의 이런 신화적 속성 때문에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즉 알영은 박혁거세의 아내이며 어머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내와 어머니의 위상이 혼재되는 사회는 모계사회와 부계사회가 혼재되는 사회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런 과도기적 사회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결혼하는 모자혼, 아버지와 딸이 결혼하는 부녀혼, 형제 사이에 결혼하는 자매혼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알영을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유사에서 계정은 계룡이 사는 우물이고, 그 계룡에서 알영이 태어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처음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삼국유사>의 이 부분만을 보면 신라의 최초 왕은 박혁거세가 아니라 알영인데요, 이런 모순 때문에 어떤 학자는 초왕생어계정初王生於鷄井‘이란 구절에서 ’왕王‘자를 ’후后‘자의 오기로 보기까지 합니다. 즉 박혁거세가 계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왕후인 알영이 태어났다는 것이죠.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박혁거세가 모두 나정 근처의 숲에 있던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일치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신라의 최초의 건국시조인 박혁서세가 실은 알영이며, 그녀는 당시 모계사회의 여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여왕을 세 명이나 모셨던 신라이니,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알영이 태어났다는 계룡도 해석을 요하는 부분입니다. 계룡은 닭을 가리키는 계鷄와 용龍이 결합된 것이지, 닭처럼 생긴 이상한 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죠. 동양의 설화에 등장하는 닭의 설화적 원형은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입니다. 삼족오는 흔히 태양에 사는 새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태양을 숭배하는 북방계통에서 나오는 천손강림설화의 원형입니다. 북방계에서 새는 태양의 상징, 천신족의 상징이며, 천신족은 북방계 유목족을 가리킵니다. 천신족이 숭상하는 닭은 암흑과 귀신을 물리치고 광명과 상서로움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닭은 곧 새벽이요, 태양이다. 닭이 음양오행설과 결합하면 주작朱雀이 되어 남쪽의 수호신이 됩니다.
용은 기본적으로 인도문화, 즉 남방문화의 상징입니다. 우리 문화에서 용의 원형은 거북(龜)이죠. ‘구지가’나 ‘해가사’를 보면 거북이 당시 신라나 가야 등에서 얼마나 숭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북은 남방문화가 강세를 띠면서 상상의 동물인 용으로 변화합니다. 용은 수신水神족과 농경족을 상징합니다.
계룡을 그렇게 본다면, 알영이 탄생할 당시의 사회상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족과 호랑이족이 등장하고, 알영신화에서는 닭족과 거북족이 등장합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족이 호랑이족보다 우세하여 곰녀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알영신화에서는 닭족보다 거북족의 힘이 더 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닭은 열세이고 거북, 즉 용이 우세한 쪽으로 계룡족의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알영에게는 남방계 농경사회의 모권적 요소와 북방계 유목사회의 부권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권적 요소가 강화되어 용이 닭을 대체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이 해석은 옛날 어떤 책에서 내용을 노트에 옮긴 것인데, 지금 출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생각나면 출처를 올리겠습니다. -
알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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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혁거세 설화가 담긴 삼국사기 기록의 뒷부분 알영이야기입니다. 해석은 윗 사료들과 동일한 부분이라 생략합니다.
석탈해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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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석탈해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서로 다르며, 사료에 따라 세가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됩니다.
1. 어업 세력으로서의 성격 : 탈해가 바닷길을 거쳐 신라로 들어왔고, 또 동해에서 어업으로 혁거세와 연결되어 있던 아진의선이 도와줘 중앙정계에 진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 야장(대장장이)로서의 성격 : 경주로 들어와 거짓 계략을 써서 호공의 집을 빼앗을 때 그의 선조가 대장장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3. 무장으로서의 성격 : 탈해는 체구가 커서 천하의 역사로서 골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3가지를 종합하면, 탈해는 발달한 철제 무기와 도구를 배경으로 동해 일대에서 어업, 해상 세력을 장악한 무장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탈해는 남해왕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것에서 그 세력과 연계했을 가능성도 크고, 이 사료를 토대로 신라에서는 해상 세력이 많은 권리를 누리며, 강성했음을 조심스럽게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탈해는 62세의 늦은 나이로 왕에 올라 24년을 왕에 있었으니 장수한 왕입니다. 이렇게 장기 집권한 왕이 유리이사금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유리 이사금의 아들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은 나이상으로도 약간 의문이 가지만, 또한 과연 이렇게 다른 성씨 세력끼리 평화로운 왕위계승이 가능했을까하는 의구심도 갖게합니다.
김알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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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해석 : 알지는 김씨계의 시조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김씨계는 황금으로 표상되는 경제력을 발판으로 집권한 세력이라는 설들이 있습니다. 특히 육로를 통한 대외 무역으로 경제력을 쌓았다는 설이 <뿌리깊은 한국사>에 수록되어 있는데, 신라 고분에서 로마 제국이 원산지인 유리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사실로 이를 뒷받침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박, 석, 김씨 중 가장 나중에 들어온 김씨계가 신라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 설화는 박·석 양씨보다 먼저 경주에 정착했으나, 정치적으로는 그후에야 비중이 커지게 된 김씨 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조상을 연결시켜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근래에는 '금'(金)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의 7대손 미추이사금 때부터 신라 왕족에 김씨가 등장했습니다.
계림이란? - 첨성대와 월성 사이의 숲인데, 여기서 발견된 금궤에서 김씨 시조인 김알지가 나왔다고 합니다. 김알지가 태어나면서 신라는 국호를 서라벌에서 계림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신라는 이것을 이후 사로라고 하였다가, 지증왕 때 신라라고 고칩니다. 그러나 사료에서는 그 뒤에서 신라를 지칭할 때 계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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