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생과 고구려의 멸망
연개소문이 죽자 맏아들 남생이 막리지가 되어 처음 국정을 맡으면서 여러 성을 순행하기 위해, 아우 남건과 남산에게 남아서 뒷일을 맡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두 아우에게 말하기를, [낭생이 두 아우가 핍박하는 것을 싫어하여 제거하려고 마음먹었으니 먼저 계략을 세우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두 아우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이 남생에게 고하기를, [두 아우는 형이 권력을 도로 빼앗을까 두려워, 형에게 거역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고 하였다. 남생은 친한 사람을 몰래 평양으로 보내 아우들을 살피게 하였는데, 두 아우가 덮쳐 붙잡았다. 이리하여 왕명으로 남생을 불러들였으나, 남생은 감히 돌아오지 못하였다. 남건이 혼자 힘으로 막리지가 되어 군사를 내어 남생을 토벌하니, 남생은 달아나 국내성에 웅거하면서 아들 현성을 시켜 당나라에 가서 애걸하였다. 6월에 당고종이 좌효위대장군 글필하력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그에 응하여 맞이하게 하니, 남생이 몸을 빼어 당나라로 달아났다. 삼국사기 권 22, 고구려본기 10 보장왕 하, 보장왕 25년 ------------------------------------------------------------------------------------- 사료해석 : 고구려의 멸망과정이 연개소문 사후 내분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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