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의 황산벌 전투
|
계백은 백제인이다. 벼슬하여 달솔이 되었다. 당나라 현경 5년 경신에 고종이 소정방을 신구도대총관으로 삼아 군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더불어 백제를 치게 했다. 계백은 장군이 되어 결사대 5천을 이끌고 대항하면서 말하였다. [한 나라의 군사로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당해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포로로 잡혀 노비가 될까 염려된, 살아서 욕을 보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통쾌하다] 마침내 가족을 모두 죽이고 말았다. 황산벌에 이르러 세 진영을 설치하고 신라 군사를 맞아 싸울 때 뭇사람에게 맹세하였다. [옛날 구천은 5천명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물리쳤다. 오늘은 마땅히 각자 용기를 다하여 싸워 이겨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자.] 마침내 힘을 다하여 싸우니 한 사람이 천명의 몫을 하였다. 신라 군사가 이에 물러났다. 이처럼 진퇴를 네 번이나 하였으나 결국 힘이 다하여 전사하였다. 삼국사기 권 47, 열전 7, 계백 ------------------------------------------------------------------------------------- 사료해석 : 유명한 계백의 황산벌 전투입니다. 다 아시니 부연설명은 없어도 되겠죠? |
이 글에 대한 참조사항
1. 이 글에 대한 관련 사료는 이 사이트 검색창에서 자유롭게 검색가능합니다.(관련 검색어로 검색하세요)
2. 이 글을 운영자 허락없이 불펌할 경우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원저작자 로고>가 펌글에 자동 삽입됩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퀴즈풀이 > 역사 사료와 데이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제 멸망에 대한 사료 (1) | 2007.03.07 |
|---|---|
| 계백 장군과 화랑 관창의 이야기 (1) | 2007.03.06 |
| 선덕여왕의 축출 (1) | 2007.03.06 |
| 선덕여왕의 대당 구원 요청과 여왕의 축출 (1) | 2007.03.06 |
| 6세기 말 고구려와 백제의 바람직하지 못한 대립관계 (1) | 2007.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