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각간의 난과 선덕왕의 즉위 사료
[혜공왕(惠恭王) 4년] 7월 3일에 대공(大恭) 각간(角干)의 적도(賊徒)가 일어나자 왕도(王都) 및 5도(道)·주군(州郡)의 도합 96각간들이 서로 싸우게 되어 크게 어지러워졌다. 대공 각간의 집이 망하매 그 집에 있던 보물과 비단 등 가재(家財)를 왕궁(王宮)으로 옮겼다. 신성(新城)의 장창(長倉)이 불에 탔으므로 역당(逆黨)의 보물과 곡식 중 사량리(沙梁里)·모량리(牟梁里) 등에 있던 것을 또한 왕궁으로 실어 날랐다. 난리는 석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三國遺事》 2, 紀異 2, 惠恭王) [혜공왕 6년] 가을 8월에 대아찬(大阿瑗) 김융(金融)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복주(伏誅)되었다. …… 11년 여름 6월에 이찬(伊瑗) 김은거(金隱居)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복주되었으며, 가을 8월에는 이찬 염상(廉相)과 시중(侍中) 정문(正門)이 모반하였다가 복주되었다. …… 16년 2월, 왕이 어려서 즉위하여 장성하면서 음악과 여색에 지나치게 빠져 수없이 돌아다니며 놀매 기강이 문란하고 재이(災異)가 거듭 나타나자 인심이 이반하고 사직(社稷)이 위태롭게 되자, 이찬 김지정(金志貞)이 반란을 일으켜서 무리를 모아 궁궐을 에워싸고 공격하였다. 4월에, 상대등(上大等) 김양상(金良相)과 이찬 김경신(金敬信)이 병력을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왕과 후비(后妃)는 난병에게 해를 입었다. (《三國史記》 9, 新羅本紀 9, 惠恭王) --------------------------- 사료해석 : 그 유명한 96각간의 난입니다. 이 난을 계기로 신라 사회는 더 이상 왕권이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혼란이 초래되었으며, 결국 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에 즉위함으로서 무열왕계가 끊기고, 신라 하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김양상이 즉위 5년도 채 안되어 후손도 없이 죽는 바람에 다시 실력자들간의 암투가 벌어지고, 이것이 바로 신라 사회의 혼란을 가속화시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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