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

신라 귀족과 농민의 생활상 신라 귀족과 농민의 생활상 지난날 신라는 두 나라에 가로막혀 북에서 얻어맞고 서에서 침범당하여 잠깐도 편안할 때가 없었다. 병사들의 뼈는 들판에 널려 있고 몸과 머리는 따로 멀리 떨어져서 뒹굴었다. .....이제 두 적국이 평정되고 사방이 편안하여 싸움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도 아울러 상을 주고 전사한 영혼에게 벼슬을 추증하였다. .....백성 가운데 집이 가난하여 남의 곡식으로 사는 자와 흉년이 든 지역에 사는 자는 원금과 이자를 다 탕감하고, 풍년이 든 지역의 땅에 사는 자는 금년 추수기에 가서 원금만을 반환하고 이자는 받지 않되.... 신라본기 문무왕 9년 당에 글을 올리고 겸하여 은 3만 3천6백 푼, 구리 3만 3천 푼, 바늘 4백 개, 우황 120푼, 금 120푼, 40승 포목 6필, 30승 포.. 더보기
골품제도와 6두품 관련 사료 골품제도와 6두품 관련 사료 4두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는 방의 길이와 넓이가 16자를 넘지 못하고 느릅나무를 쓰지 못하고, 수초를 그린 천정을 만들지 못하고, 중국 기와를 덮지 못 하고, 짐승 머리, 높은 처마, 공아, 현어(처마 끝에 다는 고기모양의 방울)를 설치하지 못하고, 금․은․놋쇠․구리․ 납으로 꾸미지 못하고, 층계와 섬돌은 산에서 나는 돌을 쓰지 못하고, 담장 높이는 6자를 넘지 못하고, 또한 들보를 걸지 못하고, 석회를 칠하지 못하고, 대문과 사방에 문을 만들지 못하고, 마굿간은 말 두 마리를 넣을 수 있게 하였다. 잡지 제2 옥사 4두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는 금․은․놋쇠와 주리평문물(朱裏平文物)을 금하고, 또한 털을 댄 담요 모피나 호랑이 가죽, 중국 담요 등을 금하였다. 잡지 제2 기.. 더보기
설씨녀 열전 설씨녀 열전 설씨녀는 율리 백성의 집 딸이었다. 가정이 한미하고 집안이 외로웠으나, 얼굴이 단정하고 행실이 얌전하였다.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어여쁜 것올 홈모하였만 감히 범접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녀의 아버지가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곡 땅의 변경수비로 나가게 되었다. 이에 그녀는 아버지가 병들었으므로 차마 보낼 수 없었지만, 여자의 몸이라 아버지를 대신하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근심만 하였다. 사량부 소년 가실은 비록 집이 가난하나 지조가 높은 총각이었다. 일찍이 설씨녀를 흠모하였으나 말을 하지 못하다가, 설씨녀가 자신의 아버지가 늙고 병들었는데도 군사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걱정한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설씨녀에게, '내 비록 나약한 사나이나 일찍이 의협심이 있다고 자처하는 터이니 변변치 못.. 더보기
신라관련 주요 사료 신라관련 주요 사료 9월, 왕이 기병 1천 명을 거느리고 부현의 동쪽에서 사냥을 하다가 말갈적을 만나 단번에 격파하고 사로잡은 포로를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백제본기 제1온조왕 22년 9월,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가 보병과 기병 2만명을 거느리고 와서 치양(황해도 백주)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므로 왕이 태자에게 군사를 주어 곧장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군을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그 포로는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백제본기 제2근초고왕 24년 8월, 아찬 길문이 가야 군사와 황산진 어귀에서 싸워 l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신라본기 제1탈해 이사금 21년 4월, 왜병이 갑자기 와서 금성(경주)을 포위하자 왕이 친히 출전하여 싸웠다. 적이 궤멸하여 도망하자 날랜 기병.. 더보기
신라인의 농업 관련 사료 신라인의 농업 관련 사료 (1) 땅이 매우 비옥하여 논 곡식과 밭 곡식을 모두 심을 수 있다. 동이열전 신라 5월, 남신현에는 보리 농사가 잘 되어 큰 풍년이 드니, 나그네가 양식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신라본기 제1파사 이사금 (2) 3월, 우박이 와서 보리 싹이 다쳤다. 신라본기 제l 저마 이사금 3년 (3) 4월, 우박이 와서 콩과 보리가 다쳤다. 신라본기 제2내해 이사금 27년 (4) 4월, 우박이 와서 벼 이삭이 다쳤다. 신라본기 제8성덕왕 18년 (5) 2월, 영을 내려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요, 음식은 백성의 하늘이니, 여러 주군은 제방을 수리하 고 농토를 널리 개척하라’고 하였다. 신라본기 제l 일성 이사금 11년 (6) 시제(저수지의 이름)를 새로 만드니 제방 길이가 2,170보였다... 더보기
백제의 농업, 요역 관련 사료 백제의 농업, 요역 관련 사료 2월, 나라 남쪽 주군에 영을 내려 남쪽 습한 곳에 논을 만들게 하였다. 2월에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제방을 수리하게 하고, 3월에 다시 명령을 내려 농사를 권장했다. 나라 사람들에게 명하여 남쪽 평야에다 논을 개간하게 하였다. 비로소 벽골지를 만드니 둑의 길이가 1.800보였다. 정월, 명령을 내려 제방을 튼튼히 하고 국내의 떠돌아다니는 자들을 모아서 농사를 짓게하였다. 백제본기 제4무령왕 10년 4월, 우두성에서 사냥을 하다가 우박을 만나 중지하였다. 5월, 가물었다. 왕은 좌우와 더불어 임유각에서 잔치를 벌이고 밤이 되도록 실컷 즐겼다. 백제본기 제4 동성왕 22년 부인이 간음을 하면 그 여자를 남편 집의 종으로 삼는다. 이역열전 백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노비 3명을 .. 더보기
고구려 관련 사료 중 핵심 발췌 고구려 관련 사료 중 핵심 발췌 2월, 명령을 내려 “급하지않은 일은 뒤로 미루라”고 명하고, 사자를 군, 읍에 보내어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였다. 고구려본기 제7평원왕 25년 (2) 후한 요동 태수 최식이 말하기를 “지금 요동에서는 쟁기로 농사를 짓는데 끌채의 길이가 4척이어서 서로 도는 데 방해가 된다. 두 마리 소를 사용하는 데 두 사람이 끌고 한 사람이 쟁기를 잡고 간다. 그 뒤에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한 사람이 덮는다. 대개 소 두 마리와 여섯 사람이 함께 일한다.”하였다. 경전제일 (2) 그들의 풍습에는 음식은 아껴서 먹으나 궁실은 잘지어 치장한다. 살고 있는 좌우에 큰 집을 세우고 귀신에게 제사 지낸다. 또 영성과 사직에도 제사를 지낸다. 그 나라 사람들은 성질은 포악하고 급하며 노략질하.. 더보기
초기 철기 국가 관련 사료 초기 철기 국가 관련 사료 동옥저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있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자라며 농사짓기에 적당하다. [삼국지] 위서동이전동옥저 나라가 작아서 큰 나라 사이에서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마침내 고구려에게 복속되었다. 고구려는 그 나라 사람 가운데 대인을 뽑아 사자로 삼아 토착지배층과 함께 통치하게 했다, 또한 대가로 하여금 맥포(담비의 가죽), 물고기, 소금, 해초류 등 조세를 한꺼번에 모아 천 리나 되는 거리를 져나르게 하였다. 또 옥저의 미녀를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며. 옥저의 사람들을 노복과 같이 취급하였다. 위서 동이전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굿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병전을 잘한다. 음식, 주거, 의복과 예절은 고구려와 비.. 더보기
위만 조선 위만 조선 위만이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하였을 때는 마침 효혜고후의 때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된 시기였다. 요동태수가 위만으로 외신(外臣)을 삼아 요새 밖의 오랑캐를 막아 변방에서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오랑캐의 군장들이 천자께 들어가 뵙고자 하는 자는 이를 이를 막지 않도록 하자고 하니 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 때문에 위만이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게 되자 그 옆의 작은 고을을 침략하여 항복을 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땅이 수천리나 되었다. 위만이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에 이르자 한나라에서 도망온 사람들을 유인한 것이 자못 많았다. 또 일찍이 들어와 천자를 뵙지 않으면서 진번의 곁에 있는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해도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했다. 원봉 2.. 더보기
단군 설화 단군 설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할 목적으로 바람, 비, 구름을 각각 주관하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를 열고, 곡식, 생명, 형벌 등 인간에게 필요한 360여가지를 주관하며 사람들을 다스렸다. 그러던 중 곰이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원하므로 환웅은 곰을 여자로 변하게 하고, 그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가 곧 단군이다. 왕검은 요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또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다. 그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 한다. 그는 1,500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이 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