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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정책

북학파와 개화파로 이어지는 흐름도 아래 그림 이미지인 개화사상 흐름도를 수정해서 쓸 수 있는 한글첨부 파일입니다. 급조해서 만든거지만, 필요한 분은 수정해서 쓰세요. 더보기
1880년 : 조선책략과 조선의 개화정책 1880년 : 조선책략과 조선의 개화정책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후 조선이 본격적으로 개화정책을 실시하게 된 계기와 그 내용입니다. 개화정책은 민씨정권(명성황후)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죠. 그럼 조선의 개화정책에 대해서 간단히 다뤄볼까요? 1. 수신사를 파견하기 시작하다. 수신사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단을 말합니다. 강화도조약 저번에 다루었죠? 강화도 조약 2조에 보면 는 항목이 있었고, 11관에 보면 6개월 이내 양국이 다시 통상장정, 조일수호조약 조규부록을 체결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조약들에 의거하여 조선도 일본에 협상 사절단을 파견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일본의 개화수준을.. 더보기
개화기 기획 자료 : 흥선대원군의 정책과 역사적 평가 흥선대원군 시대, 격동의 한국사 속에서 어떻게 봐야할까?이번장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실시한 정책에 대하여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1863년부터 1873년까지 약 10년간 정치를 이끌며 한국 근현대사의 주된 흐름을 이끌어간 사람입니다. 1. 개화와 척사가 난립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직전의 한국사회는 개화, 척사라는 두 흐름이 정치 전반에 긴장감을 주던 시기였습니다. 1860년대, 서양에서는 이양선을 보내 아시아 각국에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또 중국은 서양에 의해 베이징을 점령당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연해주를 차지하여 우리와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 더보기
한국 근대의 시작인 개화기에 대한 개관 한국 근대의 시작인 개화기에 대한 개관 오늘부터 다룰 부분은 한국 근현대사입니다. 그 중 맨 처음으로 개화기의 중요한 역사적 흐름과 사건을 주제별로 묶어서 포스팅 하보도록 하죠. 오늘은 그 첫 번째로, 1860~1900년대까지 개화기의 전반적 흐름을 개관하는 포스트를 작성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1. 1870~80년대 한국사의 주된 흐름 1880년대의 한국사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키워드는 과 함께 시작된 입니다. 한국사회에서 1850년대는 세도정치의 여파로 각종 농민봉기가 일어나고, 사회모순이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습니다. 또 밖으로는 서양의 이양선이 출몰하여 통상을 요구하는 한편,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관계가 서구의 아시아 진출로 인하여 또 다시 재정립되는 시기였습니다. 186.. 더보기
황준헌의 조선책략 조선책략 지구의 위에는 막대한 나라가 있는데, 아라사(러시아)라고 한다. 그 너비가 광대해서 3대륙에 걸쳐 있다. 육군 정예병이 백여만이고, 해군 거함이 이백여척이다. 다만, 나라를 북쪽에 세워서 하늘은 차고 땅은 척박하였다. 고로 빠르게 그 영토를 넓혀서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선세로부터 표트르대제 이래 새로 강토를 개척하여 이미 이전보다 10배가 넘었다. 지금의 왕에 이르러서는 다시 4해를 관할하고 팔방을 병합하려는 마음으로 중아세아에 있는 위구르의 모든 부족을 잠식하여 거의 다하였다 천하가 모두 그 뜻이 작지 아니함을 알고 왕왕 합종하여서 서로 항거하였다. 투르크 한 나라를 러시아가 오랫동안 병합하고자 하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협력하여 유지해 나감으로 러시아가 끝까지 굳세게 그 뜻을 .. 더보기
고균 김옥균 전 김옥균 인물 기록 과연 그렇다면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이는 오직 밖으로 널리 구미 각국과 신의로 친교하며, 안으로는 정략을 개혁하여 우매한 백성들을 문명의 도로 교육하며, 상업을 번성시켜 재정을 정리하는 데 있습니다. 또 군대를 기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할 수 만 있다면 영국은 마침내 거문도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 밖의 여러 나라도 역시 침략의 뜻을 버릴 것입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상업을 주로 하여 서로 산업의 크고 많음을 자랑하고 경쟁하는 때이거늘, 아직도 양반을 제거하여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국가의 패망은 기어코 앉아서 기다리는 꼴이 될 뿐입니다. 전하께서 이를 철저히 반성하시어 하루 빨리 무식 무농하고 수구 완고한 간신배를 축출하시고, 문벌을 폐하고 인재를 골라 중앙.. 더보기
윤선학의 상소 - 동도서기론 동도서기론 : 윤선학의 상소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유의 윤리는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성에 부여된 것인데, 천지에 통하고 만고에 뻗치도록 변하지 않는 이치로 위에서 도(道)가 되었습니다. 수레, 배, 군사, 농업, 기계는 백성에게 편하고 나라에 이로운 것으로 밖에 드러나 기(器)가 되니, 제가 바꾸고자 하는 것이 기인 것이지, 도가 아닙니다. - 승정원일기, 고종 19년 12월 22일, 윤선학의 상소 - 참고글 : 동도서기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담긴 사료입니다. 윤선학은 도는 우리 것으로, 기는 서양 것으로 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고종 황제의 동도서기론 주장 동도서기론 : 고종의 주장 왕이 말하였다. - 고종실록, 고종 19년 8월 5일 - 참고글 : 동도서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동도서기란, 강화도 조약 이후 서양의 열강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 우리의 도덕, 윤리는 그대로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 기계만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즉, 동양 유교이념인 도, 서양의 기술인 기를 합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동도서기론은 1881년 곽기락의 상소에서 출발압니다. 곽기락은 서양의 기계, 농업, 임업에 관한 책 중 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에 가려 쓰자고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이 싫은 것이지, 좋은 기술 자제도 싫은 것은 아니라는 논리이지요. 이러한 동도서기론을 조선에서는 개화 정책에 반영합니다. 위의 글은 고종의 글입니다. 더보기
곽기략의 상소 - 동도서기론, 중체서용론, 서양과학우위론 곽기략의 상소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고 한다. 도는 형상이 없어 기 속에 머무르니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는 기를 버리고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므로 군자의 학은 체(體, 몸)와 용(用, 기술)을 서로 밑천 삼고 기와 도를 같이 익히는 것이다. - 속음청사, 상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뀔 수 없는 것이 도(道)이고, 자주 변화하여 고정될 수 없는 것은 기(技)이다. 무엇을 도라 하는가? 삼강(三綱), 오상(五常)과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도라고 한다. 요순, 주공의 도는 해와 별처럼 빛나서, 비록 오랑캐 지방에 가더라도 버릴 수 없다. 무엇을 기라고 하는가? 예악(禮樂), 형정(刑政), 복식(服食), 기용(器用)을 기라고 한다. 당우삼대 조차도 덜하고 더함이 있거늘 하물며 수천년 뒤에 있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