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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단군이야기 - 설화인가, 허구인가?(고조선 편 입문하기 전에....) 단군 이야기는 설화인가, 허구인가? 1. 단군이야기의 기록 단군이야기는 고려시대 일연의 삼국유사, 이승휴의 제왕운기 등에 최초의 기록이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자손이라는 선민사상, 곰 부족이라는 토템 등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고대 설화입니다. 우리는 보통 단군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많이 부르는데, 신화는 실제 역사 이야기와는 별도로, 신비롭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허구적인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단군 이야기는 허구적인 이야기보다는 당시 역사상을 사회발전단계에 맞추어 설명하는 이야기이므로 신화보다는 설화가 맞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단군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신화로 보아 단군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논의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일반학자들에 의.. 더보기
한반도에서의 철기시대로의 이행 철기시대로 이행 - 간단히 핵심 요약 1. 철기사용과 그 시대적 특징 - 간단히 다루기... 철기시대의 특징은 철기는 청동기와는 다르게 구하기 쉬웠고, 두루 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철기를 이용하여 농업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논농사가 전국적으로 실시됩니다. 또, 철제무기를 통한 전쟁이 증가하고, 이것은 사회 분화를 촉진시켰다는 점도 중요하죠. 철기시대에는 해상활동세력, 대장장이(철기제조 기술을 가진 자), 상업세력 등이 각자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지역별로 이루어진 국가들이 철기 시대 초기에는 아주 많았죠. 삼한 70여국이라는 말에서만 보아도 이 당시 국가 숫자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국가들은 서로 정복전쟁을 통하여 집단간 계급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 더보기
고구려인의 복식 고구려인의 복식 그들은 공식 모임에서 모두 비단에 수를 놓은 의복을 입고 금과 은으로 장식한다. 대가와 주부는 머리에 책을 쓰는데 중국 책과 비슷하지만 뒤로 늘어뜨리는 부분이 없다. 소가 절풍을 쓰는데 모양이 고깔과 같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사람들은 모두 가죽으로 만든 관을 쓰는데, 사인은 새 깃을 꽂으며 귀인은 관을 붉은 비단으로 만들어 금은으로 장식한다. 옷은 소매가 큰 적삼과 통이 넓은 바지를 입으며, 흰 가족띠에 노란 가죽신을 신는다. 부인은 치마와 저고리에 선을 두른다. - 수서 동이열전, 고려 - 왕은 5채로 된 옷을 입고 흰색 나관을 쓰며, 가죽띠에는 모두 금테를 두른다. 대신은 푸른색 나관을 쓰고 다음은 진홍색 나관을 쓴다. 나관에는 새깃을 둘 꽂으며 금테와 은테를 섞어 .. 더보기
고구려의 식읍 제도 고구려의 식읍 왕이 군사를 삼도로 나누어 급히 치니 위군이 요란하여 진을 이루지 못하고 낙랑에서 물러갔다. 왕이 나라를 회복하고 공을 논할 때 밀우와 유유를 제일로 삼아 밀우에게는 거곡, 청목곡 등을 사여하고 유옥구에게는 압록, 두눌하원을 사여하여 식읍으로 삼게 하였으며, 유유에게는 벼슬을 더 주어 구사자로 삼고 아들 다우는 대사자로 삼았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 모용외가 쳐들어오자 왕은 신성으로 가서 적을 피하고자 하여 나아가 곡림에 이르렀다. 그 때 신성재인 북부 소형 고노자가 500기를 거르리고 왕을 맞아 적을 세차게 치니 모용외가 지고 말았다. 왕은 기뻐하면서 고노자에게 대형의 벼슬을 더하고 곡림을 하사하여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봉상왕 - 선비는 앞뒤로 적을.. 더보기
고구려의 대가와 부체제 증거 사료 대가와 부체제 건안(建安) 연간에 공손강(公孫康)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발기(拔奇)는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가(加)와 함께 각기 하호 3만 여명을 이끌고 강(康)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자료 참조 : 고구려의 대가에 대한 사료입니다. 발기는 스스로 하호를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영역을 옮겨 살았습니다. 초기 고구려 사회가 중앙집권이 되기 전에 부체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더보기
초기 국가들의 생할 - 고구려, 옥저, 동예, 부여 (삼국지 위지 동이전) 초기 국가들의 생활 고구려에는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원과 연못이 없어서 계곡을 따라 살며 골짜기 물을 식수로 마셨다. 좋은 밭이 없어서 힘들여 일구어도 배를 채우기는 부족하였다. 사람들의 성품은 흉악하고 급해서 노략질하기를 좋아하였다. 동이의 옛말로 부여의 별종이라고 한다. 그 국가의 대가는 힘써 일하지 않으며, 앉아서 일하지 않는자가 만여구나 된다. 하호는 멀리서 곡식과 소금과 물고기를 그들에게 공급한다. 부여에는 구릉과 넓은 못이 많아서 동이 지역 가운데 가장 넓고 평탄한 곳이다. 토질은 오곡을 가꾸기에는 알맞지만 과일은 생산되지 않는다. 사람들 체격이 매우 크고 성품이 강직 용맹하며 근엄하고 후덕하여 다른 나라를 노략질하지 않는다. 옥저는 군왕이 없이 계속 읍락이었는데, 그 이름이 장수 등..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