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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블로그이전_자료)프랑스 혁명기 상징물의 대결 : 성모 마리아와 영웅 헤라클레스 프랑스 혁명 : 상징물들의 대결 004. 마리안과 헤라클레스가 대리전을 벌이다. *** 배경 : 프랑스 대혁명 초기(1791~1800) *** 프랑스 대혁명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던 대한민국의 학생이라면, 삼부회, 국민의회, 국민공회, 쟈코뱅당,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정도를 떠올릴거에요.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거랍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왕과 귀족들만 잘사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부자들(부르조아지), 농민,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이라는데, 그럼 부자와 시민, 농민들은 같은 편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혁명을 일으켰을까요? 자, 그 의문을 파해치면서 최근 프랑스 혁명을 연구하는 분들이 관심을 갖는 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거립니다. 귀족과 민중의 봉기 프랑스 파리고등법원.. 더보기
하나퀴즈 6.10 - 이 여신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n"); c.write("\n"); c.write("평가 채점 결과\n"); c.write("\n"); c.write(" 문제 수 : 1\n"); c.write(" 채점하지 못 한 문제 수 : 0\n"); c.write(" 정답 수 : " + CorrectNumber + "\n"); c.write(" 오답 수 : " + IncorrectNumber + "\n"); c.write(" 점수 : " + TotalScore + " 점\n"); c.write("\n"); c.write("문제 해설 보기\n"); c.write("\n"); if( mail_address == "" ) c.write(" 문제지에 해설을 표시합니다.\n"); else c.write(" 결과를 전송한 후, 문제지에 해설을 표시합니다.\..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3) 역사학과 사회학이 싸우던 낡은 시대를 뛰어넘어... 1. 18c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다. 익숙한 문화 코드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데, 계속 이론 이야기만 해서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화 이야기는 이 편만 끝나면 시작될 것이니, 좀 참고 견뎌보자. 자, 오늘은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과연 역사학에 가까운지, 사회학에 가까운지 간단히 짚어보자. 역사학과 사회학의 처절한 결투는 18세기 이래 계속되었다. 서양 연대기로 따지자면 프랑스 혁명 전후부터랄까?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는 수많은 학문이 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와 라는 항목이었다. 혁명의 기록은 역사이나,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한 통계는 에 가까운 것이었다... 더보기
(근현대사 8) 1884. 갑신정변의 원인과 그 결과는? 1884. 갑신정변이 일어나다! 1. 1880년대 이후 개화파의 분위기 오늘 다룰 내용은 갑신정변입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에 일어난 사건이지요. 갑신정변은 개화기의 모든 정황과 동 떨어져 단독 사건으로는 볼 수 없는 사건입니다. 개화기의 큰 흐름 속에서 척사와 개화라는 양대 기류가 정면 충돌한 사건이지요. 따라서 갑신정변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전 포스트에서 다룬 조선책략, 위정척사, 임오군란, 개화파의 흐름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럼 간략하게 그 흐름만 다시 짚어볼까요? 1880년 개화의 지침서인 조선책략이 들어온 이후, 조선 사회는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위정척사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이 운동은 조선책략 태우기 운동, 개화를 추구하는 민씨 정권 타도 운동으로 까지 발전하려는 분위기였죠.. 더보기
(근현대사14장) 동학농민운동 4 - 동학농민운동의 논점들과 폐정개혁안의 취지 동학농민운동 4 - 동학농민운동의 논점들 1. 동학농민운동의 명칭은? 1894년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의 운동을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학농민운동이란 말은 교과서에서 쓰는 말입니다. 개론서와 각 단체의 입장은 다릅니다. 먼저, 동학농민운동이 동학 교도들의 종교운동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이라고 합니다. 동학 교단과 비교적 보수주의적인 역사학자들의 입장입니다. 당시 운동은 최시형 등을 중심으로 한 동학이 주도하였고, 동학의 포접제, 집강소 등이 사건의 중심을 이루는 기구였기 때문에 동학운동이 맞다는 논리이지요. 그러나,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과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은 으로 부릅니다. 그 이유는 사건이 일어난 이유 자체가 사회모순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전국적으로 농민들이.. 더보기
근현대사 12장) 동학농민운동 2부 - 1894년 1차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동학농민운동 2 -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1.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오늘 적을 내용은 동학에 대한 2번째 이야기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894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럼 한번 출발해 볼까요?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동학은 1850년대 후반부터 그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최제우가 혹세무민이라는 성리학적 명분에 의해 죽고난 이후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하면서 동학은 그 힘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이필제의 난 등을 겪으면서 동학은 점차 사회, 정치 운동까지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1870년대의 동학은 흥선대원군 대신 친일적인 성향의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반봉건 운동을 일으킬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학은 1862년 임술농민봉기 등 정부에 의해 크게 진압당해본 경험을 알고 있.. 더보기
한토막 역사 12화. 넥타이와 라-마르세예즈의 유래 등 3가지 일화 한토막 역사 12화. 넥타이와 라-마르세예즈의 유래 등 3가지 일화 1. 넥타이의 유래 넥타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언제일까요?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넥타이는 기원전 고대 로마 병사들이 처음 착용하였다고 합니다. 로마 병사들은 포갈이라는 목도리를 착용하면서 제복다운 멋을 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목도리와 넥타이의 중간쯤 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진정한 넥타이로는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넥타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태양왕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루었을 때입니다. 하이힐에 대한 고사 아시나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지을 때 너무 멋있게 짓던 나머지 화장실을 짓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르사유 궁전에는 더러운 오물들이 많았고, 그 오물을 피하기 위해 뒷굽이 높은 구두.. 더보기
14-15세기 : 서유럽 도시와 길드체제에 대한 분석 14-15세기 : 서유럽 도시와 길드체제에 대한 분석 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14세기 서유럽에서 장원이 몰락할 당시 서유럽 도시들은 어떤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 도시들이 중세적인 봉건제도와 대비되는 새로운 경제형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근대적일까요? 아니면 당시 도시들도 중세적인 구제도의 하나였을까요? 이 점에 착안해서 한번 도시들을 다루어보죠. 1. 14세기 큰 혼란 속에서 도시는 계층 분화가 이루어지다. 14세기에는 서유럽 전체의 전반적 경제구조가 위축되고 있었습니다. 백년전쟁으로 유럽 전체 경제구조가 흔들렸고, 흑사병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도시 경제는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12-13세기에 걸쳐 계속된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14세기에도 일부 대상인들은 그 경.. 더보기
중세 도시를 이끌어 간 경제의 주체 : 길드 중세 도시를 이끌어 간 경제의 주체 : 길드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전 포스트였던 상업발달 부분, 중세 도시발달 부분과 연결되는 포스트로서, 중세 도시 경제의 주체였던 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할까 합니다. 1. 길드가 생겨난 이유는? 길드의 발생 원인은 중세 도시들이 성립된 원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중세의 도시들은 그 성립자체가 군주의 특허장을 받아 자치권을 획득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도시민들은 도시에 애착을 가지고 서로 뭉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의 분열은 곧 도시민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도시들은 곧 상업과 수공업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에 상공업이 최소한 유지되어야지만 도시민들은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상공업이 파탄에 이르는 순간 그 도시는 봉건영주에게, 혹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