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송서 동이전 백제 편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함께 모두 요동 동쪽 천여 리 되는 곳에 있었다. 그 뒤에 고려는 요동을 침략해서 소유했고, 백제는 요서를 침략해서 소유했다. 이래서 백제의 도읍은 진평군 진평현에 있었다. 의희 이십년에 백제왕 여비로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을 삼았다. 그리고 고조가 왕위를 이어 받자 여비에게 다시 진동대장군의 칭호를 주었다. 소제 경평 이년에 여비는 장사 장위를 보내서 대궐에 나가 공물을 바쳤다. 원가 이년에 태조가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나는 들으니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은 여러 번 충성되고 순종하는 것을 본받아 바다를 건너 정성을 바쳐서 멀리 찬역하는 오랑캐를 제어하고 선대의 사업을 닦아 의로운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이미 나타났으니 그 마음 관곡하다 하겠다. 여수에 떼를 띄워 공물을 바쳐 신하 노릇을 한 때문에 왕위 이은 것을 그대로 허락하여 동쪽 번병이 되게 하는 것이니 그 맡은 바 책임에 힘써서 먼저 행한 발자취를 어기지 말라. 이제 알자 여구은자와 부알자 정경자 등을 보내서 뜻을 베풀어 위로하여 짐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했다. 그 뒤로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칠년에 백제왕 여비가 다시 공물 바치는 직책을 닦으니 여비에게 작호를 다시 내렸다. 이십칠년에 비가 글을 올리고 방물을 바치면서 서하태수 풍야부로 하여금 표문을 올려 역림식점과 요노를 요구하자 태조는 이를 모두 주었다. 여비가 죽자 아들 경이 대신 섰다. 세조 대명 원년에 사신을 보내서 벼슬을 제수해 달라고 청하자 세조는 조서를 내려 이를 허락했다. 이년에 경은 사신을 보내서 표문을 올리기를, [신의 나라는 여러 대를내려오면서 편벽되게 특별한 은혜를 받아 문무로 도움을 받고 대대로 조정의 벼슬을 받았아옵니다. 그러나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 등 십일명은 충성되고 부지런하여 마땅히 벼슬이 진급되어야 하겠아오니 내려 생각하시기를 엎드려 원하나이다]했다. 이에 이 말을 모두 들어 벼슬을 제수하고, 행관군장군 우현왕 여기로 관군장군을 삼았다. 또 행정동장군 좌현왕 여곤과 행정노장군여휘로 정노장군을 삼았다. 또 행보국장군 여도와 여애로 보국장군을 삼고, 행용양장군 목금과 여작으로 용양장군을 삼았다. 다시 행영삭장군 여류와 미귀로 영삭장군을 삼고, 행건무장군 우서와 여루로 건무장군을 삼았다. 태종 태시 칠년에 또 사신을 보내서 공물을 바쳤다.(宋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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