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양서 제이전 왜국 전
왜는 자기를 스스로 말하기를, 태백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들의 풍속은 모두 몸뚱이에 먹물을 넣어 글씨나 그림을 그렸다. 이것을 문신이라고 한다. 대방과의 거리가 일만이천여 리나 되는데, 대개 회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워낙 상거가 멀기 때문에 대방을 거쳐서 왜에 이르자면 바다를 쫓아 수로로만 가는데, 한국을 지나 잠깐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잠깐 남쪽으로도 가기를 칠천여 리를 한다. 처음 바다 하나를 건너면 바다가 넓기 천여 리나 되는데, 이 바다 이름은 한해라고 한다. 여기에서 일지국으로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또 바다 하나를 건너 천여 리를 가면 한 나라가 있는데, 이것은 이름이 미노국이다. 거기에서 또 동남쪽으로 육지로 오백 리를 가면 이도국에 이른다. 여기에서 또 동남쪽으로 백 리를 가면 노국에 이르고, 또 동쪽으로 백 리를 가면 불미국에 이른다. 여기에서 또 남쪽으로 수로로 이십일 동안을 가면 투마국에 이르고, 또 남쪽으로 수로로 십일 동안을 가고 또 육로로 한 달 동안을 가면 야마대국에 이르는데, 이곳은 곧 왜왕이 사는 곳이다. 그 곳 벼슬 이름으로는 이지마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마마획지가 있고, 또 그 다음은 노왕제가 있다. 백성들은 벼와 삼을 심고 뽕나무를 가꾸고 누에를 쳐서 옷감을 짜서 입는다. 생강과 계피와 귤과 후추, 소엽 등이 나고, 또 흑치와 진주, 청옥 등이 난다. 짐승이 소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을 산쥐라고 한다. 또 큰 뱀이 있는데, 이 짐승을 잡아 먹는다. 이 뱀은 가죽이 어찌나 단단한지 도끼로 찍어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 가죽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 빛이 딴 작은 뱀들에게 비치면 금시에 죽고 만다. 그 지방에서 나는 물건들은 대개 담이, 주애와 비슷하다. 땅은 기후가 몹시 따뜻하고 풍속은 음란하지 않고 남녀들은 모두 머리를 땋아 올린다. 부자나 높은 벼슬을 한 자는 비단이나 수 놓은 것으로 모자를 만들어 써서 마치 중국의 호공두와 같다. 음식을 먹는 데는 모두 그릇을 이용하고, 사람이 죽으면 관만 쓰고 곽은 쓰지 않는다. 흙을 긁어 모아 봉분을 만든다. 사람들의 성질은 모두 술을 좋아하고 풍속이 모두 정세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서 팔십, 구십세에 이르는 사람이 많고, 혹은 백 살에 이르는 자도 있다. 그 나라에는 여자가 많고 남자는 적어서 귀한 사람은 아내를 넷이나 다섯을 데리고 살고, 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둘이나 셋은 데리고 산다. 그래도 여자는 음란한 짓을 하거나 질투를 하지 않는다. 도둑이 없고 소송하는 일이 없다. 만일 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경한 죄를 지은 자는 그 처자를 몰수하고, 중한 죄를 지은 자는 그 종족까지 없애 버린다. 한나라 영제 광화년중에 왜국에 난리가 나서 저희들끼리 서로 정벌하고 침범해서 일년이 지나도 끝이지 않았다. 이에 그들은 저희들끼리 의논하고 함께 비미호라는 한 여자를 세워서 왕을 삼았다. 이 비미호는 남편이 없고, 귀신을 부리는 재주를 가져서 여러 사람들을 혹하게 했다. 그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세워 왕을 삼은 것이다. 그에게는 남자 동생이 있어서 그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니, 그가 왕이 된 뒤로는 그를 본 사람이 별로 없고 계집 종 일천 명이 그를 모시고 있는데 그 중에 오직 한 남자를 시켜 왕에게 출입하면서 명령을 전한다. 왕이 거처하는 궁실에는 항상 군사가 있어 그를 호위했다. 위나라 경초 삼년에 공손연이 베임을 당하자 그 뒤에 비미호는 비로소 사신을 보내 조공하니, 위나라에서는 그를 친위왜왕을 삼고 금인과 자수를 주었다. 정시년중에 비미호가 죽자 그들은 다시 남자 왕을 세웠다. 그러나 나라 안 사람들은 왕에게 복종하지 않고 다시 저희들끼리 죽이고 싸운다. 이에 그들은 다시 비미호의 종녀 대여를 세워 왕을 삼았고, 그 뒤에 가서 다시 남자 왕을 세워서 모두 중국의 작명을 받았다. 진나라 안제 때에는 왜왕 찬이 있었고, 찬이 죽자 그 아우 미를 세웠다. 미가 죽자 그 아들 제를 세우고, 또 제가 죽자 그 아들 흥을 세웠고, 흥이 죽자 그 아우 무를 세웠다. 제나라 건원년중에 무에게 저절독 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육국제군사 진동대장군ㅇ르 제수했다. 고조가 즉위하자 무에게 정동장군의 호를 주었다. 그 나라 남쪽에는 주유국이 있는데, 사람들의 키가 삼, 사척밖에 되지 않는다. 또 그 남쪽에는 흑치국, 나국이 있는데, 왜국에서 사천여 리나 떨어져 있어 배를 타고 일년이나 가야 도착한다. 또 서남쪽으로 만 리를 가면 해인이 있는데, 몸뚱이는 검고 눈은 희며 발가벗고 추하나 그 살은 아름다와서 그곳을 가는 자들은 혹 쏘아 잡아먹기도 한다.(梁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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