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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독일의 발전 2편 - 작센왕조와 살리에르 왕조

1. 10세기 작센 왕조

오토 1세 이후 신성로마제국은 오토 1세의 근거지인 작센지방에서 국왕을 배출하였습니다. 작센왕조는 가장 큰 지상과제가 독일에서 맘대로 할거하는 부족공들의 세력을 눌러놓는 것이었죠.

독일에서는 오토 1세가 추진한 종교제후의 세력 신장이라는 정책을 계속적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이 정책으로 계속적으로 부족공들이 왕권에 도전하는 것을 막았죠. 그리고 부족공들을 막기 위한 또하나의 방편으로 새로운 세속 제후들을 육성하는데 이것이 <퓌르스텐>입니다. 그들은 각 공국의 부족 제후들을 막기 위해 새롭게 탄생한 신흥 귀족이었습니다. 퓌르스텐은 광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부족 제후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였습니다.

2. 11세기 살리에르 왕조

11세기에는 콘라드 2세가 즉위하면서 살리에르 왕조가 등장했는데, 이 왕조 역시 부족공의 세력을 막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시기에는 가신집단(MINISTERRIALES)을 육성하여 새로운 관료군을 양성하였고, 이 것을 통해 부족공의 세력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이 때의 가신집단은 국왕이 직접 왕령에서 농민과 농노 출신 중에서 인재를 선발하여 전사로 키우거나 행정관료로 키우는 작업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귀족과의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자들로서 국왕에게 충성하는 새로운 집단이었죠. 이들로 독립적인 군대와 관료군을 조직하기 시작합니다.

하인리히 3세기에는 이러한 여러 제도를 통하여 국왕이 독일 전체를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즉, 퓌르스텐이라는 신진 제후들은 왕권을 지지하는 귀족이었고, 왕에게만 충성하는 가신 집단이 육성되었으며, 교회가 부족공보다 왕권을 옹호해줌으로서 이제 독일에서의 국왕은 어느 정도 왕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왕권이 다시 대외로 나갈 수준으로 발전하자, 독일 특유의 보편적 이념인 <신성로마제국>의 로마 제국화 정책이 다시 시작됩니다. 즉, 다시 이탈리아 지방으로 나아가 제국을 경영하려는 대외확장책이 시작된 것이지요. 독일과 이탈리아가 중세, 근대에 죽어도 통일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통일에 힘써야할 마지막 고비에 항상 제국화 정책을 시도하여 대외로 나가 버린다는 것... 이것이 절대왕정기에 가서는 프리드리히 1세 정도의 계몽 군주 외에는 변변한 절대군주 하나 없는 분열된 독일의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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