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 대왕릉비에 대한 문제점 논의(종합자료)
1. 광개토 대왕릉비에 관한 이 사이트 내 검색 자료(히스토리아) 비문 전문 해석 : http://historia.tistory.com/236 2. 광개토 대왕릉비는? 광개토대왕은 보통 우리가 영토를 넓힌 왕(광,개,토)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나 실제 이름은 담덕이었고,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엄청난 묘호를 쓰고 있죠. 생전에 연호는 영락으로서 보통 영락대왕이라고 합니다. 비문은 보통 3개의 단계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위 참조 자료들에도 각각 자세한 설명을 달았지만, 1부는 고구려의 건국 내역, 2부는 대외 정복과정, 3부는 수묘인 연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 비문 위치와 내용 글 참조) 3. 비문의 발견과 위조 광개토대왕릉비는 1880년경 중국 만주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이 당시 만주가 가장 강성했던 국가인 청나라의 근거지라는 점입니다. 이 비석을 발견한 청은 이 비석의 내용이 자국의 수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비석의 내용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채로 시대가 지나갔습니다. 청일전쟁 이후 청의 근거지인 요동-만주 지역을 차지한 일본은 이 비석을 위조했습니다.(청이 먼저 위조를 했을 수도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일본의 위조 이유는 임나일본부설의 침략자료로 활용하여, 일본서기의 신공황후기를 정설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비문의 중요 부분들을 쪼아내어 비문을 훼손하고 석회를 발라 없는 글자를 만들어 넣었습니다. 일본인 사까와는 이 위조된 비문으로 탁본을 만들었고, 이 탁본 또한 탁본을 만들때마다 약간씩 글자가 달라지고나, 먹물 농도가 달라져서 탁본 1장 1장의 내용이 다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일본군 참모본부가 의도적으로 비문을 위조했다는 점입니다. 4, 신묘년조의 문제점 광개토대왕릉비의 최대 논점은 바로 신묘년조입니다. 신묘년조를 위조한 목적은 일본 참모부가 일본서기(니혼쇼키)에 적혀있는 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함입니다. 즉, <신공황후가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여 약 200년간 경영하였다>라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광개토대왕릉비의 내용과 일치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시작된 것이죠. 문제가 되는 부분을 볼까요?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軍至과*南,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6년 병신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 군사가 백잔 소굴의 남쪽에 이르러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일본은 이 부분을 위조했습니다. 일본측의 위조는 일본이 백잔, 신라, 고구려를 공격하였다는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來渡海입니다. 즉, 건너와서 쳐부순 주체가 누구냐는 것인데, 그 뒤의 글자들이 지워져 있으므로 알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실제, 당시 상황에서는 광개토대왕릉비이므로 고구려가 주어가 되어야 맞습니다. 즉, 고구려가 바다를 건녀 신묘년에 왜를 쳐부셨다. 가 맞죠.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도 양국의 첨예한 대립으로 남아있는 역사상 중요한 논쟁입니다. 나머지 부분들은 위 참조 포스트들에 각각 기술되어 있습니다. 혹시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글을 읽다가 중요한 것이 눈에 띄면 바로 올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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